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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늘었는데 이미지 훼손… 브랜드 성장통 해부

英 훌리건·차브, 버버리 입고 난동
버버리 ‘고객 해고’로 이름값 찾아

환경단체 후원 내건 파타고니아
기업 유니폼화 하자 협업 끊어내

이익 위해 모든 고객 잡으려 하다
되레 다 놓치는 실수 되풀이 지적

누구와 함께 클지 안 따지는 성장
브랜드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어

성장딜레마/애니 윌슨·라이언 해밀턴/이상훈 옮김/푸른숲/2만3000원

 

2003년 잉글랜드와 튀르키예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끝나자 ‘버버리 보이즈’로 불리던 젊은 남성 패거리가 튀르키예 팬들이 탄 버스를 습격했다. 폭도들의 모자와 신발, 재킷은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 제품이었다. 이들의 악명이 높아지면서 영국에선 버버리의 상징인 체크무늬 옷을 입은 손님은 받지 않는 펍까지 생겨났다. 일명 ‘차브 체크’ 핸드백이나 우산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를 당한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 소도시 쇼핑몰을 어슬렁거리고 담배를 피우며 재미 삼아 행인을 위협하는 영국 사회의 골칫거리 ‘차브’가 버버리를 있는 대로 겹쳐 입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통있는 명품 브랜드에겐 또 다른 악재가 있었다. 전통 고객층이 늙어가면서 버버리에는 ‘고루한 브랜드’라는 인상이 짙어졌다. 수익을 좇아 전 세계에 라이선스를 내준 탓에 같은 로고를 단 제품도 값과 디자인, 품질이 천차만별이었고 허술한 상표 관리 틈으로 위조품이 쏟아졌다.

버버리와 파타고니아는 새로운 고객층의 유입으로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지만 고객 전략을 재정비해 돌파구를 찾았다. 챗GPT 생성 이미지
버버리와 파타고니아는 새로운 고객층의 유입으로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지만 고객 전략을 재정비해 돌파구를 찾았다. 챗GPT 생성 이미지

버버리의 처방은 과감했다. 먼저 런웨이용 수작업 맞춤 제품을 극히 제한적으로 파는 버버리 프로섬을 맨 꼭대기에 세우고, 그 아래 기본 아이템 중심의 버버리 브릿과 가장 저렴한 버버리 런던을 뒀다.

가장 가혹한 대응은 고객 ‘해고’였다. 축구 팬들의 상징이 된 체크무늬 야구모자를 비롯해 가장 잘 팔리던 제품 여럿을 단종하고 라이선스와 유통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차브와 일부 해외 고객에게 ‘더는 당신들의 브랜드이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애니 윌슨·라이언 해밀턴/이상훈 옮김/푸른숲/2만3000원
애니 윌슨·라이언 해밀턴/이상훈 옮김/푸른숲/2만3000원

체크무늬가 들어간 제품 비중은 전체의 20%에서 5%로 줄이고, 무늬를 은근하게만 드러내 오히려 값어치를 높이는 ‘체크 언더 커버’ 전략을 폈다. 열성 고객 일부를 내주고 이름값을 되찾은 셈이다.

버버리가 원치 않는 고객을 스스로 잘라냈다면 파타고니아는 원치 않는 고객이 제 발로 몰려든 경우다. 1973년 세워진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사업의 목적으로 내건 아웃도어 업계의 대표 브랜드다. 1985년부터 수익의 10%를, 2001년부터는 총매출의 1%를 환경 단체에 내놓았다. 핵심 고객이 야외 활동 애호가와 환경운동가였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균열은 2010년대 후반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다. 투자은행과 증권사가 회사 로고를 박은 파타고니아 조끼를 트럭째 들여와 직원과 고객에게 나눠주면서 플리스 조끼와 나노 퍼프 재킷은 금융가와 테크 업계의 비공식 유니폼이 됐다. 이윤을 앞세우는, 파타고니아와 정반대 편 기업들의 제복이 된 것이다. 맨해튼 마천루 사이를 파타고니아 플리스 차림으로 오가는 직장인이 늘수록 브랜드가 쌓아온 친환경 이미지는 깎여나갔다.

파타고니아는 영리하게 빠져나갔다. 기업 고객용 상품 정책을 손질해 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지 않는 기업과는 협업을 끊었다. 로고를 함께 새긴 제품을 주문하려던 금융권 고객에게 돌아간 회신은 정중하지만 단호했다. “파타고니아는 귀사의 고객이나 금융 산업에는 아무런 반감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공략하는 분야가 아닐 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성장 딜레마’는 이처럼 새 고객을 얻는 일이 오랜 고객을 잃게 만드는 역설을 파고든다. 경영학의 메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애니 윌슨 교수와 에모리대 고이주에타 경영대학원의 라이언 해밀턴 교수가 함께 썼다. 소비자 심리와 마케팅 전략을 연구해온 두 저자는 티파니·나이키·슈프림·포르셰 등 수십 개 브랜드의 성장통을 해부한다. 지금까지 마케팅 서적이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를 들여다봤다면 이 책은 시선을 고객과 고객 사이로 옮긴다.

저자들은 고객을 나이나 성별이 아니라 브랜드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로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뉜 고객 집단 사이의 관계는 네 가지다. 서로 무관심한 ‘분리형 커뮤니티’, 사용자가 늘수록 서로 이득을 보는 ‘연결형 커뮤니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선택을 이끄는 ‘리더-팔로어 세그먼트’, 서로의 만족을 방해하는 ‘비양립성 세그먼트’다. 충돌 역시 기능·브랜드 이미지·사용자 정체성·이념의 네 갈래로 나뉜다. 버버리는 이미지와 정체성 충돌이 뒤엉킨 경우였다.

처방도 분명하다. 고객 집단을 갈라 각자에게 맞는 가치를 주거나, 비슷한 고객을 이어 공동체를 만들거나, 특정 집단을 리더로 세워 다른 고객의 동경을 자극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한 집단을 과감히 떠나보내야 한다. 양쪽을 다 붙잡으려다 둘 다 잃는 것이 브랜드가 자주 되풀이하는 실수라는 진단이다.

팬덤이 곧 매출인 시대에 모든 고객이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클지 먼저 따지지 않는 성장은 브랜드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얼마나 많이 팔 것인가에 앞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책은 매출 숫자만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