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빗줄기가 그린을 때렸다. 10월 4일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 골프클럽, 연장 세 번째 홀. 4.5m 버디 퍼트가 홀컵으로 사라지자 작은 체구의 선수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해가 넘어가도록 이어진 승부에 그린은 어둠에 잠겼다. 우승 트로피를 받아 든 선수가 마이크 앞에 섰다. 소감을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우승하고 운 적이 없어서 기쁨의 눈물이 뭔지 몰랐어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신지애(38)가 프로 무대에서 처음 흘린 눈물이었다.
일본여자오픈 우승으로 신지애는 JLPGA 투어 통산 30승(프로 통산 68승)을 채우고 영구시드를 손에 넣었다. 투어 역대 7번째, 한국 선수로는 처음이다. 일본 4대 메이저를 모두 제패한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60년 가까운 투어 역사상 최초다. JLPGA 통산 상금은 15억엔(약 140억원)을 넘어 역대 1위다.
어머니가 남긴 1700만원
아버지 신제섭씨는 결혼 전부터 첫째는 무조건 운동선수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첫째로 태어난 신지애가 처음 손에 쥔 건 활이었다. 양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교회를 옮긴 뒤 새 교회 옆 골프연습장이 신지애의 인생을 바꿨다.
열다섯 살이던 2003년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힐 만큼 실력이 올라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차에 같이 있던 두 동생도 크게 다쳤다.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아버지는 보험금으로 빚부터 갚았다. 손에 남은 건 1700만원이었고, 그 돈을 딸의 골프에 걸었다.
“엄마 목숨하고 맞바꾼 돈이다.”
신지애는 장례를 치르고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두 동생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새벽마다 연습장에 나갔다. 국내에서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주니어로 소문이 났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때를 떠올렸다.
“동생들이 너무 아팠잖아요. 병원에 있는 동생들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제가 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0년만 하겠다던 골프
2005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대회 정상에 오른 신지애는 이듬해부터 국내 무대를 휩쓸었다. 2008년엔 LPGA 비회원 신분으로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제패했고 정식 데뷔한 2009년에는 21세의 나이로 상금왕과 신인상, 다승왕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이듬해엔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그 무렵 공개적으로 밝힌 계획이 있다. 앞으로 딱 10년만 골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골프 말고도 도전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
2014년엔 LPGA 투어를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때였다. 성적보다 ‘내 골프’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세계 1위까지 올랐던 선수가 낯선 투어에서 다시 경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에서만 30승을 쌓았다.
마흔을 앞두고도 우승하는 힘은 지독한 자기 관리에서 나온다. 콜라 한 잔도 아무 때나 마시지 않는다. 2년 전 국내 개막전에서 만났을 때 신지애가 털어놓은 규칙이 있다. 보기 없이 라운드를 끝낸 날에만 콜라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1승은 쉽게 오지 않았다. 영구시드를 눈앞에 두고 1년 5개월을 기다렸다.
끝까지 버텼고, 연장 세 번째 홀에서 퍼트가 떨어졌다.
열다섯 소녀가 삼켰던 울음은 서른여덟 베테랑이 돼서야 터져 나왔다.
이달, 신지애는 또 티잉 구역에 선다. 10년만 하겠다던 골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