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협업 상품으로 인해 초래된 우려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룹의 기업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표현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해 협업과 모든 후속 프로젝트, 홍보 활동을 즉각 중단합니다.”
지난 28일 밤 11시쯤. 헬로키티와 마이멜로디로 유명한 일본 캐릭터 기업 산리오의 중국 공식 웨이보 계정에 짧은 사과와 입장문이 올라왔다. 헬로키티가 일본 TBS 첩보 드라마 ‘비반트(VIVANT)’ 속 요원 복장을 한 캐릭터 굿즈를 출시했다가,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에 불똥이 튀자 전격적인 협업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중국 비밀조직이 일본인 요원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이 중국 현지에서 거센 반발을 사며 불매 운동 조짐을 보이자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베이징일보가 산리오의 사과문이 해외 채널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어떤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자, 일본 본사는 29일 오후 본사 홈페이지에 일본어 사과문을 올리고 협업 중단을 공식화했다. 1차 사과 후 15시간여 만에 두번째 사과를 한 것이다.
산리오가 이토록 재빠르게 고개를 숙인 이유는 명확하다. 포기할 수 없는 매출 때문이다.
산리오의 올해 상반기(1~6월) 중국 매출은 7억 8100만위안(약 15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8% 급증했다. 2026년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기준 중국 매출은 15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84% 늘어, 전 세계 매출(약 80억위안)의 약 19%를 차지했다. 산리오는 2024년 중기경영계획에서 중국 본토와 북미를 해외 2대 핵심 성장축으로 지정하고, 2027년 3월까지 중국에서 이익 5억 위안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 중국 매장은 2025년 말 59개에서 2026년 6월 71개로 늘었고, 하반기에도 20여 개를 더 열 계획이었다. ‘백기투항’하지 않았다면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그 목표들이 통째로 물거품이 됐을 터였다.
이번 논란은 프랑스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가 3개 국어로 공식 사과문을 낸 지 불과 하루 만에 나왔다. 음바페는 한 팟캐스트에서 중국의 전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얼굴이 합성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두고 “어떤 남자, 중국의 독재자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발언이 알려진 지 24시간 만에 멍뉴유업 등 중국 대형 스폰서 3곳이 줄줄이 계약을 해지한 데 이어, 그가 속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중계도 중단됐다. 음바페는 27일 “경솔한 발언이었다”며 영어·프랑스어·중국어로 공식 사과했고, 라리가 회장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모델이 눈꼬리를 잡아당기는 광고가 아시아인 비하라는 비판을 받자 주말 사이 광고를 전 세계에서 삭제했고, 2023년에는 명품 브랜드 불가리가 해외 웹사이트에서 대만을 중국과 분리해 표기했다가 중국 네티즌의 반발이 일자 표기를 수정하고 사과했다.
외국 기업과 개인이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가 사과한 일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과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터지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본사의 법적 검토를 거치는 등 며칠의 유예 기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24시간을 넘기지 않는 분위기다.
대응 속도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단축된 것은 중국 내 소셜미디어와 관영 매체의 여론 형성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불매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 대형 광고 캠페인에 국한되던 논란의 범위가 드라마 협업 굿즈 하나, 모델 개인의 즉흥적인 한마디 등 사소한 일상 영역으로까지 좁아진 점도 빠른 사과를 부추긴다. 애초에 사전 통제가 불가능한 돌발 리스크인 만큼, 진위를 따지기보다 즉각 사과하고 제품을 회수하는 것만이 ‘가장 저렴한 보험료’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글로벌 브랜드 사이에서는 논란 발생 수 시간 내 현지 SNS 사과, 본사 채널 다국어 사과문 게시, 제품 회수 및 계약 파기라는 정형화된 위기 대응 공식이 자리 잡는 모양새다. 글로벌 셀럽과 중국 브랜드를 연결하는 에이전시 MGI 그룹의 창업자 마이클 맥리치는 28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성공하려고 중국인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조심하지 않았을 때 어떤 파장이 오는지는 알아야 한다”면서 자사의 광고 모델 계약서에 “행위·평판 조항을 넣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시장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내놓은 사과문이 외부에서 또다시 ‘굴복’, ‘과도한 자기검열’이라는 역풍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 중국 사업을 유지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 관리 비용과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