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소가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면서도 껍질이나 씨, 줄기 등은 무심코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농산물은 주로 먹는 과육이나 꽃봉오리보다 버려지는 부위에 식이섬유가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과일·채소의 활용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연구 결과다.
◆ 과일·채소 10종, 버리는 부위 식이섬유 함량 더 높아
31일 의료·식품업계에 따르면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KCL) 레이철 깁슨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국제 식품과학·영양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Sciences and Nutrition)’에 과일·채소 12종의 부위별 식이섬유 함량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신선 농산물의 주로 먹는 부분과 껍질, 씨, 줄기 등 잘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의 식이섬유 함량을 비교한 결과, 12종 가운데 10종에서 버려지는 부위의 총 식이섬유 함량이 주로 먹는 부위보다 높았다.
연구 대상에는 비트와 피망, 브로콜리, 땅콩호박(Butternut squash), 콜리플라워(꽃양배추), 케일, 키위, 파인애플, 수박 등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각 농산물을 생것 상태로 분석해 부위별 식이섬유 함량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버려지는 부위 100g당 식이섬유 함량은 땅콩호박의 껍질과 씨 등이 9.26g으로 가장 높았다. 키위 껍질은 7.96g, 피망의 꼭지와 씨 등은 6.68g, 파인애플 껍질과 심은 6.64g이었다. 수박 껍질은 2.10g으로 가장 낮았다.
특히 파인애플은 껍질과 심의 식이섬유 함량이 과육보다 453.7% 많아 주로 먹는 부위와 버려지는 부위 사이의 차이가 가장 컸다. 수박도 껍질의 식이섬유 함량이 과육보다 425.5% 많았으며, 땅콩호박은 362.7%, 피망은 233.8%, 키위는 195.0%, 콜리플라워는 112.0% 차이를 보였다.
반면 모든 농산물에서 버려지는 부위의 식이섬유 함량이 더 높은 것은 아니었다. 브로콜리는 일반적으로 먹는 꽃봉오리 부분의 식이섬유 함량이 줄기보다 28.4% 높았다. 펜넬(회향)도 식이섬유가 주로 먹는 안쪽 부분에 버려지는 심과 바깥층보다 10.6% 많았다.
◆ 식이섬유 부족에 음식물 쓰레기까지…활용법 주목
식이섬유는 소화기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영양 성분이다. 장내 환경과 배변 활동에 영향을 미치며 포만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제2형 당뇨병과 심장질환 위험을 낮추고 심혈관질환과 일부 암, 조기 사망 위험 감소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식이섬유 섭취 부족이 주요 영양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하루 평균 식이섬유 섭취량은 16.4g으로, 하루 권장량인 30g에 크게 못 미친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도 연구 배경으로 제시됐다. 영국에서 매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약 1000만t에 달하며, 이 가운데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36% 수준이다. 연구팀은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농산물의 버려지는 부위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분석 대상 농산물에서 잘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가 전체 무게의 약 25~48%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요리에 활용하면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동시에 식재료 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활용 방법도 다양하다. 연구팀은 브로콜리 줄기를 버리지 않고 볶음 요리에 넣는 방법을 예로 들었다. 과일과 채소를 손질할 때 무조건 껍질이나 줄기를 제거하기보다 식재료의 특성과 조리법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자는 취지다.
깁슨 교수는 "주로 먹는 부위와 버리는 부위 사이의 식이섬유 함량 차이가 매우 뚜렷했다"며 "이런 부위의 활용법을 찾는다면 식이섬유 섭취 부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영양학적, 경제적 손실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조건 먹기보다 익숙한 요리에 활용…추가 연구 필요
연구팀은 과일과 채소의 버려지는 부위를 무조건 먹도록 권장하는 것보다 영양학적 이점이 있는 식재료를 익숙한 요리에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재료의 특성과 개인의 입맛을 고려해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조금씩 늘리는 방식이다.
깁슨 교수는 “이 연구는 완벽한 식생활을 추구하거나 사람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식물의 더 많은 부분을 활용하려는 작은 실천도 누적되면 건강과 환경에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각 농산물의 생것 상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조리 과정에서 식이섬유 함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제 섭취했을 때 소화 가능성은 어떠한지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품종과 조리법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