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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 덕후’들의 지독한 책 소유 방식 [조선생활실록(實LOG)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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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은 완질 매물 소식 듣자
책값 마련하려 묘전까지 팔아
유만주는 48권 거질 구입하자
인장부터 만들어 날마다 찍어
송준길은 구입 경로로 장서 분류

“책을 점검해 다락에 보관해 두니, 무언가 얻은 듯 참으로 충만한 것이 수레로 금이나 곡식을 가득 실어 온 것보다 훨씬 낫다.” (유만주 일기 ‘흠영’, 1784년 10월 10일)

안정복이 15냥에 구매한 ‘역대통감찬요’ (남평문씨 인수문고 소장). 왼쪽 표지는 권암의 글씨이고, 오른쪽 소장 경위 기록은 안정복의 글씨이다.
안정복이 15냥에 구매한 ‘역대통감찬요’ (남평문씨 인수문고 소장). 왼쪽 표지는 권암의 글씨이고, 오른쪽 소장 경위 기록은 안정복의 글씨이다.

18세기 한양의 선비 유만주가 책 거간꾼에게서 48권짜리 대형 역사책 전집을 사들인 날 일기에 남긴 고백이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호인 ‘흠영(欽英)’을 새긴 인장을 만들어 책마다 찍겠다고 일기에 적었다. 오래 기다린 한정판 굿즈를 손에 넣고 인증샷부터 찍는 요즘 사람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진진하면서도 눈물겨운 장서가의 에피소드가 있다. ‘동사강목’을 저술한 실학자 안정복의 이야기다. 1771년, 안정복은 경상도 감영에서 인쇄된 50책 완질의 역사서 ‘역대통감찬요’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정복은 책 주인이 부르는 대로 책값을 주기로 했지만, 책 주인은 15냥을 요구했다. 15냥은 당시 쌀 여섯 가마니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으나, 안정복은 이를 지불할 돈이 없었다.

1670년 현종이 이원정에게 하사한 ‘주역언해’(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광주이씨 이원정가 가전). 이원정은 “밥 한끼에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내용의 인장을 만들어 날인했다.
1670년 현종이 이원정에게 하사한 ‘주역언해’(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광주이씨 이원정가 가전). 이원정은 “밥 한끼에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내용의 인장을 만들어 날인했다. 

그는 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조상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 비용을 충당하던 선산의 묘전(墓田) 두 곳을 팔아 책값을 마련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부동산까지 처분해 책을 구입한 파격적인 행위였다. 안정복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묘전을 팔아넘기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으나, 자손들이 내 뜻을 헤아려 부지런히 책을 읽고 공부한다면 이 묘전에도 경중이 있는 법이다”라는 간절한 메모를 남겼다.

 

그는 겉으로는 “우리 집에는 본래 역사책이 없어 부득이 샀다”라며 집안의 땅을 판 행동을 합리화했지만, 실제 안정복의 장서목록을 실증적으로 교차 검증해 본 결과, 집안에는 이미 조부 때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책이 적지 않았다. 역사책에 대한 끝없는 학문적 갈증과 지독한 소유욕을 지닌 지식인이 둘러댄 인간적인 핑계였던 셈이다. 이처럼 장서가가 직접 남긴 메모와 실제 기록을 대조해 보면 당시 장서가들의 책을 향한 집요한 심리를 알 수 있다.

1586년 작성된 배삼익 장서목록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1586년 작성된 배삼익 장서목록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안정복의 덕질은 책을 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50책에 일일이 튼튼한 종이 표지를 입혀 손수 다 꿰맸음을 자랑하기도 하였고, 50책 표지의 제목은 글씨 잘 쓰는 벗이자 사돈인 권암에게 부탁해 책의 단장을 마쳤다.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꾸미고 기록으로 남기는 모습은 오늘날 수집가의 모습 그대로이다.

1668년 작성된 송준길 장서목록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1668년 작성된 송준길 장서목록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장서가들은 임금에게 하사받은 책의 경우 더욱 특별하게 관리했다. 임금에게 직접 찾아가 감사 인사를 올릴 수 없었던 신하들은 책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17세기 문신 이원정은 임금이 내린 하사본에 “일반불망군은(一飯不忘君恩)”이라는 여섯 글자를 새긴 인장을 따로 찍었다. “밥 한 끼 먹을 때에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인 두보를 기리던 옛말에서 따온 문구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원정 장서 실물에서 이 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요즘 말로 치면 임금에게 받은 선물에만 붙인 ‘전용 인증 마크’였던 셈이다.

1688년 작성된 박세당 장서목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1688년 작성된 박세당 장서목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모은 책을 어떻게 정리했는지도 장서가마다 달랐다. 요즘 우리가 사진첩을 날짜별, 인물별, 여행지별로 나누듯 배삼익은 자신의 책을 주제별로 나누었다. 송준길은 ‘임금에게 하사받은 책’, ‘집안에 있던 책’, ‘빌려 온 책’처럼 들어온 경로에 따라 분류했다. 박세당은 경전과 역사책은 전통 방식대로 정리했지만, 자기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 생활에 꼭 필요한 자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료 등 자신의 생활방식에 따라 따로 분류했다. 이원정과 이담명 부자는 책을 수집했던 시기별로 장서목록을 꾸렸다. 이처럼 장서목록은 단순히 책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장서가의 평소 학문 습관과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오늘날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수만 권의 전자책을 내려받고, 밤새 OTT 시리즈를 정주행하며 콘텐츠를 쉽게 소비한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흔해진 탓에 무언가에 온 마음을 쏟고 깊이 파고드는 설렘은 오히려 옅어지고 있다. 조상의 땅과 맞바꿀 만큼 간절하게 책 한 권의 무게를 음미했던 옛 선비들의 치열한 ‘책 사랑’은, 범람하는 활자 속을 살아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지식을 마주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던져준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60)

 

손계영 (대구가톨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