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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에 파묻힌 신들, 발할라 입성 대신 장례식…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5만원권 지폐 뭉치가 여신의 몸 위로 쏟아졌다. 신들이 사는 성의 건축비를 치르려고 한 여성을 넘기기로 했던 거래가 그 몸을 돈으로 덮는 장면이 됐다. 신화 속 황금이 지폐가 되면서 바그너가 창조한 오페라 세계는 객석과 성큼 가까워졌다.

신들의 이야기를 금권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로 옮긴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의 한 장면. 2029년까지 이어지는 ‘링 사이클’의 첫 작품이다. 연합뉴스
신들의 이야기를 금권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로 옮긴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의 한 장면. 2029년까지 이어지는 ‘링 사이클’의 첫 작품이다. 연합뉴스

국립오페라단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라인의 황금’은 욕망이 넘실거리는 무대였다. 바그너를 몰라도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으리라던 연출가 로렌조 피오로니의 호언장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휴식 없이 이어지는 두 시간 반이 쏜살같이 흘렀다. 신들의 이야기를 금권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로 옮긴 연출이 장대한 서사의 물길을 텄다.

 

‘라인의 황금’은 네 작품이 하나로 이어지는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이른바 ‘링 사이클’의 출발점이다. 1962년 창단한 국립오페라단이 ‘반지’ 전편 초연 150주년을 맞아 올해부터 2029년까지 완주에 나서는 대장정의 첫 무대이기도 하다.

 

비극은 ‘사랑을 포기한 자만이 황금으로 세상을 지배할 반지를 만들 수 있다’는 비밀에서 시작된다. 라인강의 세 처녀에게 구애하다 조롱당한 알베리히는 사랑을 저주하고 황금을 훔친다. 신들의 왕 보탄은 거인 형제에게 발할라 성을 짓게 하면서 처제이자 젊음의 여신인 프라이아를 대가로 약속한다. 그러나 성이 완성되자 프라이아 대신 값을 치르려고 알베리히에게서 황금과 반지를 빼앗는다. 반지를 빼앗긴 자의 저주는 새 주인을 따라가고, 반지를 넘겨받은 거인 형제 사이에선 끝내 살인이 벌어진다.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공연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공연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피오로니는 이 약탈의 고리를 현대사회의 계층과 권력 관계로 깔끔하게 풀었다. 멸시받던 알베리히가 부를 움켜쥐어도 더 강한 자가 나타나 빼앗는다. 신들은 1970년대 갱스터 영화 속 범죄 가문이다. 보탄은 회색 체크 양복 차림에 한쪽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로게는 곱슬 금발 가발에 가죽점퍼를 걸친 해결사다. 거인 형제는 공구 벨트를 찬 장인들이다. 신들의 위엄 대신 거래를 뒤집고 폭력을 휘두르는 절제 없는 욕망의 민낯이 드러났다. 연출가의 새로운 해석을 전면에 내세우는 ‘레지테아터’가 낯선 신화를 읽는 문턱을 낮춘 셈이다.

 

보는 재미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무대 바닥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듯한 마천루 모형과 쓰레기봉투가 메운 인간 세계였다. 그 위로 떠오른 구조물은 알베리히의 단칸방이 됐다가 덜 지어진 신들의 저택 거실로 바뀌었다. 목재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와 앙상한 철제 계단, 도시 모형 사이에 흩어진 쓰레기가 번갈아 눈에 들어오며 부를 향해 치솟는 세계와 그 밑에 쌓인 잔해가 대비를 이뤘다.

 

무대 양옆의 대형 화면도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시작부터 알베리히의 거친 피부를 확대해 보여주는 카메라는 인물의 몸을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었다. 등장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며 객석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와 공간을 드러내고, 얼굴과 사물을 확대해 장면의 의미를 짚었다. 무대 전체를 보는 눈과 인물에게 바짝 다가가는 눈이 교차하면서 극은 영화 같은 속도감을 얻었다.

 

다만 신들의 무도함을 경고하는 에르다에게 곰 인형 의상을 입힌 연출은 객석에서 헛웃음을 자아냈다. ‘탐욕은 그만’이라는 팻말을 영상 속은 물론 객석에서까지 흔드는 과잉 연출은 극의 몰입을 깼다.

 

공들인 미장센은 마지막 장면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신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새 성으로 들어서는 원작 결말을 피오로니는 검은 옷을 입은 권력자들이 모이는 장례식으로 바꿨다. 샴페인 잔을 들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파티에 가까웠다. 무대 중앙 계단에 오른 트럼펫 연주자들이 발할라 입성 음악을 울리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피오로니는 서면 인터뷰에서 “어쩌면 이것이 권력의 가장 무서운 능력 가운데 하나”라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승리의 이미지로 바꿔버릴 수 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음악은 묻힌 느낌이었지만 로타 쾨닉스가 지휘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두 시간 반 동안 긴 호흡을 유지했다. 콘트라베이스의 낮은 내림마 음 하나에서 출발해 악기가 차례로 가세하며 거대한 흐름을 이루는 전주곡부터 치밀했다. 니벨룽족의 노동을 새기는 모루의 리듬에서 마지막 장면의 장엄한 울림에 이르기까지 연주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극을 이끈 건 사무엘 윤이었다. 바그너 극의 명인답게 알베리히를 맡은 그는 “소유한 자는 근심에 시달릴 것이고 갖지 못한 자는 시기심에 갉아 먹히리라”라고 저주를 부르짖으며 살아 있는 감정으로 생생한 인물을 빚었다. 보탄 역 올렉산드르 푸슈냐크는 그만한 카리스마를 뿜어내지 못한 반면 파졸트 류지상, 파프너 김대영, 에르다 이단비는 객석 2층까지 울리는 풍부한 성량으로 감탄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