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임명에는 몸을 굽히고, 두 번째에는 허리를 더 굽히며, 세 번째에는 고개를 숙인 채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춘추시대 송나라의 대부 정고부가 솥에 새겼다는 경구로, 지위가 오를수록 스스로를 낮추라는 교훈이다. 동한 시대의 양진은 한밤중에 황금 열 근을 내밀며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옛 부하에게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안다”며 꾸짖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초기부터 주요 연설에서 이 고사들을 직접 인용해 공산당 간부들에게 철저한 겸손과 청렴을 강조했다. 이는 올해 6월 출간된 ‘시진핑 당건설 문선’에도 실렸다.
지난달 29일 폐막한 공산당 제20기 5중전회는 사실상 ‘종엄치당’ 단일 안건으로 열렸다. 종엄치당은 기율을 엄격히 집행해 부패분자를 발견 즉시 제거한다는 개념으로, 1987년 제13차 당대회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이 통제망은 당 전반을 옥죄는 ‘전면적 종엄치당’으로 확장됐다. 통상 5중전회는 중장기 경제 발전 계획(5개년 규획)을 집중 논의하고, 당 기강 확립은 주로 임기 말기에 다뤄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해 10월 4중전회에서 15차 5개년 규획 건의를 먼저 처리한 뒤 5중전회 전면에 당 기강 확립을 올려세웠다.
이유는 분명하다. 결국 조직을 하나로 묶고 절대적인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당의 시스템보다 최고지도자 1인이 중심이 된 현 구조에서, 강력한 당 건설과 종엄치당 드라이브,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 단행된 중앙위원·후보위원 34명에 대한 대규모 처분은 모두 내년 제21차 당대회에서 ‘4연임’을 염두에 둔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에 이견이 없다.
3연임을 확정했던 2022년 20차 당대회 당시에는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견 없이 권력을 쥐었지만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 사이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경제성장률은 둔화했고, 청년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시 주석은 고령에 접어들었다. 4연임을 앞둔 지도부로서는 잠재적 불안 요소를 사전에 솎아낼 필요가 있다.
솎아진 빈자리를 채우며 부상한 ‘치링허우’(1970년대생) 간부들의 면면을 보면 과학·기술 관료나 국유기업·금융권 출신 실무파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일을 추진하는 실무 능력을 갖췄지만 독자적인 정치 네트워크가 없다. 오직 권력자의 낙점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충성심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지도부의 바람대로 강력한 통제가 당을 바로 세우고 중국을 이끌 동력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국제관계학과의 퍼트리샤 손턴 부교수는 2024년 글에서, 끝없는 사정과 과도한 당 규율 압박은 기층 간부들의 탈진을 부르고 ‘탕핑’(가만히 누워 있기) 현상을 부추긴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에 따르면, 일하는 척만 하는 ‘형식주의’나 책임을 떠넘기는 ‘관료주의’로 징계받은 당 간부는 2023년 약 4만6000명에서 2025년 11만8000명으로 2.5배 넘게 폭증했다. 이는 처벌이 강화된 결과인 동시에 징계를 피해 일하는 시늉만 내며 복지부동하는 관료가 늘었다는 방증이다.
‘가짜 충성’ 문제도 나타난다. 미국 컬럼비아대 장쥔옌·시카고대 양다리 교수가 2006년 상하이 고위 관료 숙청 전후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대대적인 사정 이후 공개적 지지 발언은 크게 늘었으나 실제 정책적·내면적 지지는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사 조치나 처벌에 취약한 집단일수록 살아남기 위해 속마음을 숨기고 충성을 가장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는 정치적 기반 없이 발탁된 치링허우 간부들일수록 자리보전을 위해 ‘가짜 충성’에 기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 주석은 “말로는 충성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양면인’을 솎아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처벌을 조일수록 관료들은 복지부동과 가짜 충성 뒤로 숨어들기 쉽다. 정고부와 양진이 역설한 것은 가혹한 감시가 아닌 내면의 도덕률이었다. 공포로 그 마음을 강제하려 할 때 조직은 오히려 활력을 잃을 수 있다. 엄격한 당 다스리기가 중국을 이끌 결집의 동력이 될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족쇄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