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먹거리 중 하나가 고기국수다. 돼지 뼈와 고기를 푹 고아 낸 뽀얀 육수에 쫄깃한 면발을 말고 두툼하게 썬 수육을 얹어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한 끼 식사로 사랑받는다. 고기국수의 뿌리를 따라가면 제주 사람들의 잔칫날 음식문화와 음식을 나누던 공동체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 잔칫날 돼지고기 국물에 밀국수를 말아낸 음식
제주 향토음식인 고기국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제주에 밀가루 건면이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한 그릇이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전해진다.
2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예부터 제주에서 돼지는 마을의 대소사를 치를 때 빠지지 않는 가축이었다. 잔치나 상례가 있으면 돼지를 잡아 고기와 국물을 쌀밥과 함께 대접했다. 이후 삶은 건면을 고기 국물에 말고 돼지고기와 순대, 두부 등을 담은 ‘고깃반’을 곁들이는 면상이 등장하면서 고기국수가 의례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처럼 밀가루 건면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쌀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는 보리와 잡곡을 활용한 범벅이나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 끓인 칼국 등이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와 중국 산둥성 출신 화교의 이주 등을 계기로 밀가루와 건면이 유입되면서 제주에도 국수 문화가 점차 확산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산 밀가루가 제주에 들어오면서 건면 제조업소가 생겨났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을 거치며 밀가루 음식도 대중화됐다. 1973년 가정의례준칙 제정 이후 경조사에서 쌀밥 대신 국수를 대접하도록 권장한 것도 국수 문화가 자리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현재와 같은 고기국수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감귤산업과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고 양돈 농가의 돼지 사육 두수가 늘면서 돼지고기 공급이 풍부해지자 대중식당들이 돼지 육수에 국수를 말고 고기 세 점을 고명으로 얹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잔칫날 여러 사람이 나눠 먹던 음식이 식당의 일상적인 한 끼로 자리 잡은 것이다.
◆ 택시기사의 한 끼에서 관광객 찾는 음식으로
제주시 일도2동에는 고기국수 전문점들이 모여 있는 ‘국수문화거리’가 있다. 이곳에 고기국숫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당시 점심을 해결하려는 택시기사와 늦은 밤 해장 음식을 찾는 애주가들이 주로 찾으면서 식당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후 제주시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앞 약 900m 구간에 고기국수 특화거리를 조성했다. 2009년 4월에는 상인들이 뜻을 모으고 제주시가 안내 간판 설치와 홍보 등을 지원하면서 국수문화거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고기국숫집 약 20곳이 영업했으며, 매달 11일을 ‘국수데이’로 정해 할인 행사도 진행했다.
인근에 삼성혈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신산공원 등 관광 명소가 자리한 것도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 지역 주민들의 소박한 한 끼이자 택시기사들의 단골 메뉴였던 고기국수는 점차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맛봐야 할 대표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관광공사의 관광정보 사이트 비짓제주에서도 국수문화거리를 주요 먹거리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 ‘베지근한 맛’ 고기국수, 입맛 따라 고명 달라져
제주 사람들은 고기국수의 맛을 ‘베지근하다’고 표현한다. 제주어로 고깃국물의 맛이 깊고 묵직하면서 감칠맛이 난다는 뜻이다.
고기국수는 돼지 사골을 푹 고아 낸 국물에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 수육을 고명으로 얹는 단출한 음식이다. 기본적인 조리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고기국수를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식당마다 육수를 내는 방식과 고명을 올리는 방법에 차이가 생겼다.
고명은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 수육이 기본이다. 여기에 파와 깨, 김가루 등을 더하고 기호에 따라 후추나 고춧가루를 넣어 먹는다. 곁들이는 반찬도 김치와 깍두기를 기본으로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제주 향토음식으로 출발한 고기국수가 기본적인 맛과 조리법을 유지하면서도 식당별 개성과 소비자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