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박소란의시읽는마음] 11월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신철규

같은 숫자가 나란히 서 있다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사선으로 비친다

너의 왼뺨에 난 솜털이 하늘거리고

오른뺨은 그늘로 선명해진다

나는 조금 더 햇볕 쪽으로 다가앉는다

 

첫눈 오면 뭐 할 거야.

 

그것이 사랑의 속삭임인지 이별의 선언인지 헷갈려서 심장이 아래로 한 치쯤 내려앉는다

몸속의 저울추가 무거워진다

파동처럼 흐르던 마음이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실내엔 아지랑이처럼 음악이 피어오른다

고요하던 실내에 음악이 켜지면 실내는 그만큼 무거워질까

소리에도 무게가 있을까

흘러간 시간들은 어디에 쌓이는 걸까

 

(하략)

 

겨울이 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선명해지는 겨울의 색. 밤사이 조용히 무게를 줄이는 나무와 같이, 침침하게 가라앉는 하늘과 같이, 겨울 초입의 풍경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스며 있다. 나란히 선 두 개의 가느다란 숫자 ‘11’은 부쩍 쌀쌀해진 거리를 헤매며 서로의 시린 뺨을 염려하는 젊은 연인을 닮은 것도 같다. “첫눈 오면 뭐 할 거야.” 살뜰한 이야기를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순한 “사랑의 속삭임”조차 “이별의 선언”처럼 느껴진다면, 영락없는 겨울의 예감.

 

계절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 어디에 가닿는 것일까. 시 속 예감은 이렇게 이어진다. “먼 미래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역시나 시간은 엄하고 이별은 흔한 것. 텅 빈 나무처럼 우리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볼 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짚어본다. 지금은 11월. 어떤 막막한 끝을 예감한다 해도 아직 첫눈의 순정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 곧 찾아들 눈을 함께 보자고, 함께 맞자고, 약속해 볼 수 있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