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조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럼 직업을 바꿔야 해.”

지방에 본가를 둔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는 더 넓은 집을 찾아 경기도와 인천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서울에서는 막막했던 내 집 마련이 고향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윤선영 사회2부 기자
윤선영 사회2부 기자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 지방 정착의 관문은 연고 없는 곳에서 낯선 관계와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주변 사례가 머릿속에 남아 있기도 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라면 그런 부담은 덜하리라 생각하며 동의했다가 아차 싶었다.

비수도권의 일자리 부족 문제는 낯선 얘기가 아니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놓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숱하게 접했다. 다만 그 어려움을 주로 첫 취업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경력을 쌓으면 다음 기회를 얻기는 조금 수월하겠다고 여겼다. 연봉이나 근무 조건을 조정하면 고향에 돌아갈 여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에는 쌓아온 경력을 활용할 회사가 한두 곳쯤은 있으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친구는 고향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다가 서울로 왔다. 직무와 근무 조건을 따지면 고향에서는 지금 하는 일을 이어갈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첫 직장을 고를 때부터 이후 경력을 고려하는 추세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지난 6월 취업준비생 1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는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대기업 계약직’을 택하겠다고 했다. 이들 중 68%는 ‘이후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를 이유로 꼽았다.

이직이 언제나 더 나은 조건을 위한 개인의 ‘선택’인 것만도 아니다. 회사 사정으로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할 수도 있다. 지역에서 취업하더라도 경력을 이어갈 선택지가 부족하거나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이직은 곧 이주가 된다.

국회미래연구원은 9월 보고서에서 2010~2024년 평균 1인당 실질 지역내총생산이 가장 높았던 울산에서도 청년이 순유출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역 경제 수준만으로는 청년 정착을 설명하기 어렵고 경력을 발전시킬 산업·직무 구조와 주거·교통·문화·보육 등 생활 기반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역대 정부마다 균형 발전을 내걸었지만 수도권 쏠림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발간된 산업연구원 보고서는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옮긴 청년 3명 중 1명이 수도권으로 돌아갔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비수도권 체류 기간은 평균 1.6년이었다.

청년이 머물 조건은 일자리 하나로 채워지지 않는다. 박정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취임식에서 “기업의 성장이 좋은 일자리로 이어졌는지, 주민의 소득이 늘고 일상의 부담이 줄었는지, 청년이 지역에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고향에 가려면 직업부터 바꿔야 한다는 친구의 현실이 이제는 달라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