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치솟으면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애플마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아이폰 판매 호조에도 부품값이 급등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메모리값 상승은 국내외 스마트폰과 PC 등 전자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애플은 회계연도 4분기(7~9월) 매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12% 증가한 1144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7~9월 분기 역 최대 매출이다. 연간 매출도 4790억달러로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아이폰 매출이 575억8000만달러로 17% 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실적 호조에도 시장의 관심은 애플의 수익성에 쏠렸다. 애플은 다음 분기 매출총이익률(마진율)을 이번 분기(47.9%)보다 낮은 45~46%로 전망했다. 매출총이익률은 매출액에서 제품 생산 등에 들어간 원가를 뺀 이익의 비율이다. 수치가 낮을수록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애플은 이익률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메모리 가격 상승을 꼽았다. 존 터너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취임 후 첫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값에 대해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메모리값 부담을 덜려고 아이폰·아이패드·맥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올렸으나 비용 부담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됐다.
애플은 그동안 AI 투자 경쟁에 따른 재무 부담이 작은 편인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메타 등이 AI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과 달리 자체 인프라 투자를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AI 투자 경쟁이 부품 공급망으로 번지면서 애플도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주요 메모리 제조사가 AI 인프라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등 고부가 제품 생산에 집중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빠듯해진 게 부품값 상승의 요인이다. HBM은 일반 D램보다 생산 과정에서 웨이퍼를 더 많이 사용한다. HBM 생산 비중이 커질수록 스마트폰과 PC 등에 쓰이는 메모리의 공급 여력은 줄어드는 구조다.
메모리값 상승 부담은 국내 전자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의 수익성은 나빠졌다. 신형 폴더블폰 출시로 매출은 늘었지만 메모리 등 주요 부품값 상승이 수익성을 눌렀다. 올해 3분기 모바일경험(MX)·네트워크 사업은 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가격 인상 여력이 작은 중저가 제조업체 부담은 더 크다. 부품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PC 시장에서는 원가 상승이 수요 부진으로 번지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29일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PC 수요가 약해졌다고 밝혔다. 실적 전망까지 시장 기대를 밑돌면서 이튿날 주가는 5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메모리 공급 부족이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높아진 가격이 다시 수요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값 상승은 업계 전체의 문제”라며 “제품군을 다각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활용해 가격 인상분을 상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범용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보다 10~15%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분기 전망치인 90~95%보다 상승폭은 둔화했지만 가격 오름세는 계속되고 있다. 애플은 다음 분기에도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 공급 제한이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난달 출시한 애플의 첫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에 대해선 초기 반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부 제품의 화면 결함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터너스 CEO는 “극히 적은 비율의 아이폰 듀오가 반품돼 이를 교체해 주고 있다”고 했다. 사비 칸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듀오의 공급 부족과 관련해 “공급과 수요가 언제 균형을 이룰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