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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 남고딩인데”…스포츠·요리·가요계 대표가 된 귀화 스타들

‘안산 토박이’ 비웨사부터 이연복 셰프, 가수 주현미까지
겉모습·혈통 달라도 국적과 삶의 터전은 대한민국
왼쪽부터 육상 국가대표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이연복 셰프, 가수 주현미. 비웨사 인스타그램 캡처·뉴시스
왼쪽부터 육상 국가대표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이연복 셰프, 가수 주현미. 비웨사 인스타그램 캡처·뉴시스

 

겉모습이나 혈통은 달라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있다. 한국 문화 속에서 학창 시절을 다 보내고도 법적 제약으로 인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외국인’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 정체성 혼란과 신분적 한계를 딛고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스포츠·요리·음악 등 각자의 분야에서 자리 잡은 3명을 짚어봤다.

 

◆“어디 비씨예요?”…꿈에 그리던 태극마크 단 ‘안산 토박이’ 국가대표

 

안산에서 나고 자란 육상 국가대표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캡처
안산에서 나고 자란 육상 국가대표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캡처

 

지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는 외국인 외모를 가졌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뼛속부터 한국인이다.

 

아시안게임 출전 후 다양한 예능 섭외가 들어왔다는 그는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아시안게임 인터뷰 영상에 달린 댓글을 언급했다. 당시 “어디 비씨세요?”와 “한국 남고딩 같다”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제가 한국 남고딩이었는데”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비웨사는 2003년 경기 안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이곳에서 다닌 자칭 ‘안산 토박이’다. 하지만 부모가 모두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어서 태어날 때 한국 국적을 얻지 못했다.

 

전지훈련 외에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도 없지만 비웨사는 15년 동안 외국 국적으로 살아야 했다. 어려서부터 육상에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국적 문제로 선수의 길을 포기하려 했지만,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8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 국적을 얻었다. 어머니는 귀화를 위해 10년간 공을 들였다.

 

귀화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육상 선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어머니 덕분에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과거 GS칼텍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녀 어린 시절 친구가 없었다”며 “아이를 낳으면 어느 나라든 아이를 위해 무조건 그 나라에 있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비웨사에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덕에 비웨사가 편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9월 일본 나고야 미즈호 파크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한국 마지막 주자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월 일본 나고야 미즈호 파크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한국 마지막 주자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뉴시스

 

100m 10초13으로 개인 최고 기록 겸 한국 역대 2위 기록을 보유한 비웨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38초43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며 한국에 메달을 안겼다. 목표였던 태극마크를 당당히 단 그는 후배들이 선물해 준 오륜 펜던트를 가슴에 품고 더 큰 세계 무대를 향해 뛰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화교 출신으로 태어나 중식 대가가 되기까지

 

미소 짓고 있는 중식 셰프 이연복. 이연복 인스타그램 캡처
미소 짓고 있는 중식 셰프 이연복. 이연복 인스타그램 캡처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타 국적으로 살아야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59년 서울 왕십리에서 산둥성 출신의 화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연복은 부모의 국적을 따라 출생과 동시에 대만(중화민국) 국적을 가졌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가세가 기울자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중식당 배달원으로 일하며 요리계에 입문해야 했다.

 

이후 이연복은 17세 때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 최연소로 입사하고 22세에 주한 대만 대사관 최연소 주방장으로 입성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26세 때 축농증 수술 부작용으로 후각을 잃는 큰 시련을 겪었지만 담배를 끊고 아침 식사와 과음을 하지 않으며 미각을 키우고자 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10년간 식당을 운영한 그는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중식당 ‘목란’을 열었다.

 

한국인과 대만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이연복 셰프. 유튜브 채널 ‘코미디티비 Comedy TV’ 캡처
한국인과 대만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이연복 셰프. 유튜브 채널 ‘코미디티비 Comedy TV’ 캡처

 

그는 2023년 IHQ 예능 ‘미친 원정대’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문화에 익숙했는데 국적만 대만이었다”며 “한국 사람으로도 인정 못 받고 대만에 가면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 후 귀화해 한국 국적을 얻은 이연복은 “정체성 혼란기를 겪으며 국적도 한국으로 바꿨다”며 “이제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아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방송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국민 가수’의 반전…화교 출신 약사 가수 주현미

 

트로트 가수 주현미(왼쪽)와 이연복 셰프.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캡처
트로트 가수 주현미(왼쪽)와 이연복 셰프.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캡처

 

트로트 가수 주현미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혼 전까지 대만 국적으로 살아야 했던 화교 출신 귀화인이다.

 

주현미는 1961년 산둥성 출신의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화교 3세로 태어났다. 광주 동구 서석동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부계주의 국적법에 따라 대만 국적을 가졌다. 초등학교 땐 이연복 셰프와 같은 반이기도 했다.

 

화교 신분이었던 그의 유년시절은 마음 한편에 상처로 남아있다. 주현미는 2018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학교가 달라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화교라고 놀림도 많이 당했다”며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그 시절에 더 심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어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워보니 화교라는 신분으로 타국에서 지낸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또 “할머니가 한국인이어서 집의 생활과 문화는 다 한국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학교 가면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화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놀림 받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회상하는 주현미. 유튜브 채널 ‘TVCHOSUN LIFE’ 캡처
화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놀림 받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회상하는 주현미. 유튜브 채널 ‘TVCHOSUN LIFE’ 캡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생계를 돕고자 했던 그는 한성화교학교 졸업 후 중앙대 약대에 진학해 약사로 일했다. 약대에 재학하며 MBC ‘강변가요제’에 입상하기도 한 주현미는 1985년 ‘비 내리는 영동교’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1988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임동신과 결혼한 후 이듬해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과거와 현재 중 언제가 더 좋냐는 스태프의 질문에 그는 “지금이 좋다. 열심히 살았으니까 옛날 일은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립지 않다”고 답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상처를 딛고 트로트계 대표 가수로 거듭난 그의 서사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