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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지휘대 지킨 ‘음악의 설교자’ 블롬슈테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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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앞두고 떠난 ‘지휘자들의 지휘자’ 블롬슈테트
향년 99세… 72년간 지휘대 지킨 거장
베를린 필 “악보에서 진실 추구한 음악적 사상가”
“나는 음악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는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때는 육체도 나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음악과 그 음악이 주는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72년 동안 지휘대를 지킨 거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4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9세. 그가 생전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인터뷰에서 남긴 말처럼 평생 음악과 사랑에 빠져 살았던 지휘자였다. 100세 생일을 앞둔 내년 6월까지 공연 일정이 잡혀 있을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지휘대를 놓지 않았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2025년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를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하고 있다. 예테보리 심포니 유튜브 채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2025년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를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하고 있다. 예테보리 심포니 유튜브 채널

5일 외신을 종합하면 고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마지막 무대는 지난 5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심포니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공연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른 그는 말러 교향곡 9번을 힘겹게 이끌었고 연주는 3악장에서 몇 분간 중단됐다. 이어진 이틀 공연은 다른 지휘자가 맡았으며 이후 예정된 공연도 취소됐다.

 

현역 최고령 마에스트로였던 고인은 특히 100세 생일인 내년 7월을 앞두고 6월에는 빈 필하모닉과의 기념 공연도 예정돼 있었다. 다니엘 프로샤우어 빈 필하모닉 악단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100세 생일을 함께 연주회로 축하하기를 바랐다”고 애도했다.

 

블롬슈테트는 화려한 몸짓이나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기보다 철저한 악보 연구와 절제된 지휘로 음악의 본질에 다가간 지휘자였다.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악곡의 구조와 흐름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해석으로 존경받았다. 특히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를 비롯한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악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과장된 감정 표현이나 극적인 효과에 기대지 않고 음악 자체의 힘을 끌어내는 것이 그의 미덕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4일 발표한 추모문에서 블롬슈테트를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특별한 존재’로 기렸다. 악단 운영위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바마리아 토마지는 “블롬슈테트는 악보 속에서 정직함과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음악적 사상가로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 그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음악적 역량 못지않게 따뜻하고 겸손한 인품에 있었다. 토마지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일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관객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며 “긍정적인 기운으로 우리 오케스트라에도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이어 “리허설과 공연에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휘는 권위적인 통솔보다 악단과의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했다.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동료로 대했다. 정상급 악단의 단원들까지 그를 ‘지휘자들의 지휘자’로 존경한 이유다.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인연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12월 당시 스무 살이었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함께 악단에 데뷔했다. 언론의 관심은 전년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지메르만에게 쏠렸지만 블롬슈테트 역시 ‘열정과 설득력’을 인정받았다. 2008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초청받아 브루크너와 브람스, 베토벤의 작품을 지휘했다. 카를 닐센과 프란츠 베르발트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도 힘썼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AP연합뉴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AP연합뉴스

특히 브루크너 해석은 그의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거대한 교향악의 구조를 치밀하게 조망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호흡과 유기적인 흐름을 잃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지난 4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마지막 공연에서도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세 차례 지휘했다. 베를린 필은 그의 음악을 빚어내는 능력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토마지는 “여러 시간에 걸친 리허설을 마친 뒤에도 그의 정신적 활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며 “그와 함께했던 경이롭고 충만한 음악적 작업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1927년 7월 1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스웨덴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성장했고 스톡홀름 왕립음악원과 웁살라대에서 공부했다. 지휘자가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바이올린을 공부하며 대학 합창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브람스 ‘독일 레퀴엠’의 두 악장을 지휘할 기회를 얻으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이후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고 독일 다름슈타트에서는 현대음악을, 스위스 바젤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을 배웠다. 이고르 마르케비치와 레너드 번스타인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젊은 날의 일화는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줄리아드 장학금이 끊길 무렵 그는 약속도 없이 뉴욕 카네기홀 맞은편 아파트에 있는 번스타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30분 뒤 그는 탱글우드 음악센터에서 번스타인에게 배울 장학금을 얻어 그 집을 나섰다.

 

1953년 쿠세비츠키 지휘상을 받은 그는 이듬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1955년 잘츠부르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후 노르셰핑 심포니와 오슬로 필하모닉, 덴마크 방송교향악단,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등을 이끌었다.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지휘자(1975~1985년)를 거치며 유럽 정상급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 10년간 음악감독을 맡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서는 악단의 연주 수준과 국제적 명성을 끌어올렸다.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와 브람스 ‘독일 레퀴엠’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후 함부르크 북독일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1996~1998년)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1998~2005년)을 역임했다. 정규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세계 유수 악단의 초청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2016년 10월 밤베르크 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고령에도 악보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음악을 직업이 아니라 평생의 소명으로 여겼다. 2020년 공개된 인터뷰에서는 “제 사명은 좋은 음악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며 “음악은 생각을 달라지게 하고, 비례와 아름다움을 더 예민하게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만프레트 호네크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은 그를 “가장 위대한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자 인류애의 등불”이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