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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실로 한 땀씩 엮어낸 여성들 저항·연대의 역사

실을 잇는 여자의 손/ 니콜 네리그/ 이영아 옮김/ 돌고래/ 2만2000원

 

191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여성 참정권 행진에 특별한 현수막이 등장했다. 참정권을 요구하다 투옥된 여성 80명의 서명이 수놓인 현수막이었다. 약 1만명의 여성이 참여한 행진에서 바늘과 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도구가 됐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전통 의상에 국기와 지도, 정치적 구호를 수놓으며 저항의 뜻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가사 노동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바느질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신간은 여성들이 직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해 온 역사를 살펴본다. 임상·연구 심리학자이자 뜨개 애호가인 저자 니콜 네리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사례를 통해 바느질이 단순한 집안일을 넘어 창조와 저항, 치유의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니콜 네리그/ 이영아 옮김/ 돌고래/ 2만2000원
니콜 네리그/ 이영아 옮김/ 돌고래/ 2만2000원

저자는 특히 직물 노동에 담긴 여성의 지성과 창조성에 주목한다. 복잡한 무늬를 짜려면 수학적 계산과 공간 감각,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직물의 문양을 제어하던 자카르 직기의 천공카드는 초기 계산기와 컴퓨터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취미나 가사 노동으로 평가절하됐던 바느질이 지적인 활동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바느질은 상실과 고통을 견디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의 뜨개옷을 풀어 수의를 만든 여성, 집단 학살로 희생된 가족의 기억을 직물에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반복적인 손동작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불안을 다스리고 삶의 통제감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뜨개질을 통해 불안정한 일상을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책은 전통 직조 장인부터 현대의 자수·퀼트 예술가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글을 쓸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여성들이 바늘과 실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온 흔적들이다.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전쟁과 강제 이주의 경험을 천 위에 새기고, 공공장소를 뜨개 작품으로 뒤덮으며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