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민영화 문제가 국회 국정감사와 맞물려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선 KAI 민영화가 주요 쟁점이 됐다.
다만 미묘한 기류는 감지되고 있다.
KAI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의 황기연 행장은 현재로서는 KAI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면서도 “앞으로의 계획까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은이 발주한 ‘우주·항공산업 경쟁력 강화’ 용역 결과가 나올 연말쯤이 KAI 민영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KAI의 향후 성장과 기업 생존 등을 감안하면, 민영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수은·KAI가 헤어져야 할 이유
KAI는 국내 방산업체 중에서도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증권 시장에 상장되어 있지만, 정부측 지분이 35%(수은 26.41%, 국민연금공단 8.75%)에 달한다. 이 정도면 ‘준공기업’이라고 불릴 수 있다.
문제는 국책 은행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KAI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다.
은행의 전문성은 대출 심사와 위험관리다. 기업의 전략을 세우고 경영진을 감독하는 등의 경영 업무는 본업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리인(임기제 사장 등)을 내세우게 된다. 그런데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
대리인은 실제 업무 처리 과정과 내부 사정을 잘 알지만, 주인은 이를 완벽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대리인에 대한 감시 및 기업 감독 능력을 약화시킨다.
KAI도 마찬가지다.
KAI는 정부→수은→KAI 경영진으로 위임 단계가 이어진다. 정부로선 위임의 단계가 길어서 KAI에 대한 감시가 약해지기 쉽다. 최대주주인 수은은 기업 경영이나 감시가 본업이 아니다.
정부와 수은이 KAI 경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는 KAI의 경영능력 발전을 저해하고 ‘주인 없는 구조가 성장을 막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수은 입장에서도 KAI 지분 유지가 효과적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은의 주요 업무는 수출금융이다. 그런데 수은은 예금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 충당을 정부 출자에 의존한다.
방위산업 등에서 수출금융 수요가 계속 늘어나지만, 수은이 자기자본을 충당하는 것은 늘 한계가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은이 보유한 KAI 지분은 수은의 본업인 수출금융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
오히려 KAI 지분에 해당하는 자본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수출금융이 기회비용이 되어버린다.
수은이 KAI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회계처리와 규제자본 반영 여부가 변수지만, 기본적으론 지분을 현금화함으로써 수은의 자기자본이 더 쌓이고 대출 여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은행의 핵심 업무인 대출과 위험관리에 집중하면서 수출금융을 확대,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KAI는 민영화를 통해 기업의 추가 성장과 생존을 도모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수은과 KAI가 ‘헤어질 결심’을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투자 통한 수출 경쟁력 육성 필요
K방산은 과거에는 K-9 자주포처럼 한국군이 쓰던 장비를 그대로 다시 제작해서 수출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방산업계에 대한 투자 증가 및 수주 활동 확대가 지속되면서 K방산도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국방획득체계에 의한 무기개발 외에도 업체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통한 장비 개발·판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업체는 자국군 발주 전에 새로운 무기를 개발, 수출에 나서는 사례가 눈에 띤다.
독일 라인메탈은 KF-51 판터 전차를 선제적으로 개발해 헝가리에 판매했으며, 이탈리아와도 KF-51을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전차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K방산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만든 레드벡 보병전투차와 K-9MH 차륜형자주포처럼 한국군 사용 이력이 없는 장비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KAI도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닌 수출용 장비 개발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방산시장에 단순한 플랫폼 판매에서 패키지 수출로 변화하는 것도 업체 차원의 대규모 투자 필요성을 높인다.
중동 등에서는 기체부터 무장까지 한꺼번에 구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미국도 사우디 등에 전투기를 팔 때, 기체와 무장 및 후속군수지원에 이르는 요소를 패키지로 제시한다.
이같은 부분을 모두 충족하려면 상당 기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자본력이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KAI는 정부 측 대주주가 증자에 나서기가 어렵다.
투자 여력을 갖춘 민간 기업들이 자본을 대고 경영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자본 외에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리더십과 조직 체계도 중요하다.
KAI 사장은 지분 구조 탓에 선임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 교체=사장 교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이같은 구조는 중장기적인 연구개발 측면에서 경쟁사들보다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항공우주·방위산업 엔지니어나 KAI 내부 출신보단 ‘낙하산 사장’이 더 많았던 KAI의 특성을 감안하면, 6세대 전투기처럼 기술적 난도가 높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관료적 의사결정으로는 추진할 동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독과점 논란, 정말 맞나
독과점 논란은 KAI 민영화가 거론될 때마다 지적되는 부분이다. 특정 대기업이 KAI를 인수하면 독점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KAI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한화그룹이 15.89%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KAI의 지배구조 변화에 관계없이 KAI는 이미 국내 방위산업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지니고 있다.
국내에서 전투기와 훈련기, 헬기를 제작하는 업체는 KAI 외에는 없다.
헬기도 마찬가지다. 육군에서 널리 쓰이는 수리온을 비롯해 최근 개발이 끝난 상륙공격헬기까지 모두 KAI가 만든다.
다른 무기체계도 독과점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주포·상륙돌격장갑차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차는 현대로템, 소형·중형전술차량과 미사일 발사차량은 기아자동차가 독점 생산한다.
국내 방위산업은 태생부터 독과점 구조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까지는 정부가 전문화·계열화 제도를 통해 기업별로 특정 무기체계 생산을 전담하게 했을 정도다.
현재는 경쟁 체제로 바뀌었지만, 이같은 구조는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특정 대기업의 KAI 인수 시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국가 안보와 직결된 방위산업의 특성을 감안해서 핵심 요소에 대한 통제와 수출 지원 등을 위해 민간 기업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면서도 정부 지분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영화의 취지와 국가안보 요소를 결합한 형태다.
상장 민간기업 형태인 미국 록히드마틴·보잉과 달리 유럽에선 정부가 방산업체 지분을 지닌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에어버스는 프랑스·독일·스페인 정부가 26%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견제 및 지원이 가능한 셈이다.
KAI는 창립한 지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T-50 훈련기와 KF-21 전투기, 수리온 헬기 등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경쟁 강도가 치열해지고, 첨단 기술 개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 조성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KAI의 성과를 계속 발전시켜서 한국의 항공우주·방위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