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다. 어깨는 곧게 펴고 팔꿈치는 허공에 고정한다. 조준하자마자 손목이 짧게 꺾이고 다트가 슉- 날아간다. 탁.
두 번째. 탁.
세 번째. 탁.
세 발이 모두 트리플 20에 꽂혔다. 심판이 목청껏 외친다.
“원 헌드레드 앤드 에이티!” 세 발 만점, 180점이다. 관중석이 뒤집힌다.
다트 세계 1위 루크 리틀러(19)는 지난 1월 세계선수권을 2년 연속 제패했다. 우승 상금은 100만파운드(약 19억원). 동네 펍에서 즐기던 다트가 거액의 우승 상금을 내거는 스포츠가 됐다.
1900원짜리 장난감 다트판
기저귀를 찬 18개월 아기가 자석 다트판에 다트를 던진다. 가족이 찍어 둔 홈비디오다. 15년 뒤 영상 속 아기가 세계선수권 결승 무대에 섰다. 홈비디오는 순식간에 영국 전역에 퍼졌다. 다트를 던지는 자세가 아기 때와 똑같았다.
어머니 리사 리틀러는 양초 가게에서 일했고 아버지 앤서니 버클리는 택시를 몰았다. 첫 다트판은 뭐든 1파운드(약 1900원)에 파는 잡화점에서 샀다.
리틀러는 “기억은 안 나는데, 아빠 말로는 제가 쇼핑 카트에 앉아서 자석 다트판을 집어 들었대요”라고 했다.
아홉 살엔 동네 유소년 다트 클럽에 들어갔다. 매주 월요일 밤 연령별 대회를 여는 곳이다. 무대에 서려면 열다섯 살은 넘어야 했다. 클럽은 리틀러를 위해 규칙을 바꿨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은 열세 살 무렵엔 하루 4~5시간씩, 하루도 안 빼고 던졌다. 상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주말엔 동네 대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리틀러가 우승하자 속임수를 썼다는 말이 돌았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자 리틀러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제가 왜 속이겠어요. 그만큼 잘하면 그럴 필요가 없죠.”
3년 뒤엔 무대가 세계선수권으로 바뀌었다. 2024년 대회에서 세계랭킹 164위의 열여섯 살 리틀러가 결승까지 치고 올라갔다. 결승은 480만명이 봤다. 영국 스포츠채널 스카이스포츠 역사상 축구를 뺀 종목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1년 뒤엔 끝내 정상에 섰다. 열일곱, 다트 역사상 최연소 세계챔피언이었다.
“더는 하기 싫다”
챔피언의 1년은 쉴 틈이 없다. 프로다트협회(PDC)가 여는 대회만 1년에 60개가 넘는다. 2월부터 5월까지는 매주 목요일 영국과 유럽을 돌며 다트 프리미어리그를 치른다. 비행기만 1년에 30~40번 탄다.
승리가 쌓일수록 환호성만 커진 것은 아니었다. 매번 이기는 챔피언이 지겹다며 박수 대신 야유를 보내는 관중이 생겼다. 세계선수권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리틀러도 지지 않았다.
“여러분이 산 티켓이 제 상금이 됩니다. 야유해 줘서 고마워요.”
올봄엔 리틀러가 스스로 논란을 불렀다. 4월 맨체스터 경기에서 상대가 실수하자 리틀러는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상대가 다시 승부를 끝낼 기회를 잡자 우는 시늉까지 했다. 경기는 졌다.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가는 곳마다 야유가 따라붙었다. 다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일주일 뒤 브라이턴 경기에서는 180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8강 탈락이었다.
하지만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매주 경기는 계속됐고 리틀러는 야유 속에서도 다트를 던졌다.
지난 5월 영국 런던 O2 아레나. 리틀러는 마지막 한 판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트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우승 인터뷰에 나선 리틀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성적은 안 나오고, 맨체스터 일 이후로는 매주 야유를 들어야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여자친구한테 ‘더는 하기 싫다’고까지 했어요.”
리틀러는 한참을 울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몇 주 내내 야유만 듣던 리틀러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리틀러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올해 지켜야 할 우승컵이 아직 두 개나 남아 있다.
다시 팔을 들고, 어깨를 펴고, 손목을 꺾는다. 18개월 때와 같은 자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