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앞둔 어린이에게 가상현실(VR) 체험을 제공하면 수술 전 불안과 공포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VR 체험 후 어린이들이 직접 평가한 심리적 고통과 공포감 점수가 낮아졌으며, 심박수와 수축기 혈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수술 전 불안, 어린이 50~75%에서 발생…VR로 긴장 완화 시도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다얀잔 S. 위제싱헤 박사 연구팀은 어린이병원에서 6~15세 어린이 80명을 대상으로 9개월간 VR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를 6일 국제학술지 ‘PLOS 디지털 헬스(PLOS Digital Health)’에 발표했다.
수술 전 불안은 수술을 받는 어린이의 50~75%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안이 심한 어린이는 마취 유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수술 후 통증이 심해지거나 회복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후 의료기관 방문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연구팀은 어린이의 수술 전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약물에는 부작용 등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적 놀이와 음악 치료, VR 등 비약물적 방법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병원 환경에서의 적용 효과를 보여주는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구팀은 어린이들이 수술 전 대기하는 공간에서 VR 프로그램을 체험하도록 했다. 어린이들은 메타 퀘스트 2 헤드셋을 착용하고 5~20분간 가상현실을 경험했다. 체험 환경은 장난감 등이 배치된 상호작용형 방과 잔잔한 파도와 야자수가 있는 해변 등 두 가지로 구성됐다.
◆ 심리적 고통·공포감 점수 하락…심박수와 혈압도 감소
연구팀은 VR 체험 전후 어린이들이 직접 평가한 심리적 고통과 공포감 점수를 비교하고, 심박수와 수축기 혈압 변화도 측정했다. 심리적 고통은 0~10점, 공포감은 0~4점 척도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심리적 고통 점수의 중앙값은 체험 전 3점에서 체험 후 1점으로 낮아졌다. 공포감 점수도 1점에서 0점으로 떨어졌다. 연구팀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으로 판단한 기준에 해당하는 어린이는 심리적 고통에서 80명 중 46명(57.5%), 공포감에서 44명(55%)이었다.
체험 전 불안 수준이 높았던 어린이일수록 점수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다만 연구팀은 불안 수준이 높았던 어린이의 점수가 이후 평균에 가까워지는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 등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체 지표에서도 변화가 관찰됐다. 평균 심박수는 VR 체험 전 분당 86.3회에서 체험 후 80.5회로 5.8회 감소했다. 수축기 혈압도 평균 113.9㎜Hg에서 109.8㎜Hg로 4.1㎜Hg 낮아졌다.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설문에 참여한 어린이의 91%는 다음에도 VR을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부모의 95%는 다른 어린이에게 프로그램을 추천하겠다고 했으며, 참여 간호사 29명 전원도 소아 진료에 VR 프로그램을 추천한다고 응답했다.
◆ 병원 현장 적용 가능성 확인…효과 입증 위한 추가 연구 필요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VR 체험을 실제 병원 환경에서 어린이의 수술 전 불안을 관리하는 비약물적 방법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와 가족, 의료진의 수용도가 높다는 점도 진료 현장 도입에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비교 대조군 없이 한 병원에서 진행한 의료의 질 개선 사업을 분석한 것으로, 불안 감소가 VR 체험 자체의 효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의료진의 관심이나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 등 다른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VR 체험 직후의 변화만 평가했을 뿐 실제 마취 유도 과정이나 수술 후 통증, 회복 기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VR을 소아 수술 전 불안 관리에 일상적으로 활용하려면 일반적인 진료나 다른 비약물적 방법과 효과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시험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