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는 한국힙합 30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를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다큐 제작을 위해 만난 1세대 래퍼와 청년 래퍼, 평론가, 리스너와의 대화는 42분에 다 담기지 않았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온라인 연재로 이어 갑니다.
평일의 그는 서울의 한 음원 유통사 경영관리팀 직원 오세관(29)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주말이면 래퍼 노아차가 돼 홍대와 신촌, 때로는 수백㎞ 떨어진 지방 무대에 선다. 음원과 공연으로 버는 돈이 생계가 되느냐는 물음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정말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출연료 대신 “이번엔 커피나 한 잔 사줘”로 끝나는 공연이 많은 동네다.
그래서 직접 판을 깔았다. 2024년 8월 시작한 공연 브랜드 ‘ATM’은 올해 1월 열 번째 공연으로 첫 시즌을 마쳤다. 유명세와 상관없이 “이 사람 공연이 궁금하다” 싶은 이들을 직접 섭외했고, 대관료를 넘긴 티켓 수익은 출연자 전원에게 나눴다. 그동안 60개 넘는 팀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천안에서 나고 자라 2015년 대학 힙합 동아리에서 랩을 시작했고, 졸업 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가사에 욕을 거의 쓰지 않는다. 지난 7월21일 서울 홍대 인근에서 퇴근 직후의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천안에서 홍대까지
―노아차라는 이름의 뜻은.
“원래 풀네임은 ‘노 아이디어 차일드(No Idea Child)’인데 사람들이 길다고 앞 글자만 따서 불러줬다.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입에 착 감겨서 그냥 쓴다. 생각 없는 아이로 들릴 수 있지만, 쉽고 재미있기만 한 음악이 아니라 메시지를 챙겨서 감정적인 재미를 주고 싶다는 뜻이다. ‘노 아이디(ID), 어 차일드(a child)’, 이름 없는 아이라는 중의적인 뜻도 있다. 이름보다 이 사람이 어떤 공연을 하고 어떤 음악을 하는지 봐 주면 좋겠다는 의미다.”
―랩은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생 때 변성기가 와서 고음이 안 올라갔다. 노래방에 가도 노래를 못 부르니 랩 있는 곡을 불렀다. 본격적으로는 2015년 대학 신입생 때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힙합 동아리 형들이 공연하는데 너무 멋있어서 동아리에 들어갔고, 처음 가사도 써 보고 녹음도 공연도 했다. 이른 시작은 아니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졸업하고 서울에 온 건 꽤 무모한 선택이었다. 아는 사람도 직장도 없었다. 대학 때 서울 공연을 한번 해 봤는데 천안·아산 동아리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서, 어떻게 되더라도 서울에서 시야를 넓히자 싶었다. 집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업하다 1년쯤 지나 우연히 공연 기회가 생겼다. 공연이 없어도 공연장에 놀러 가다 보니 아는 사람이 생기고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분들도 만났다.”
◆평일엔 9시 출근 6시 퇴근, 주말엔 래퍼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나.
“평일에는 음원 유통사 경영관리팀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퇴근 뒤에는 쉬거나 작업하거나 친구를 만난다. 주말에는 거의 매주, 못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공연이 잡혀 있다. 작업은 내 곡도 있지만 다른 사람 곡에 피처링 제안을 받아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 앨범은 준비 중이라 작년부터 피처링 위주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꾸준히 제안이 들어와 음원이 계속 나오니 ‘얘 활동하고 있구나’ 보여줄 수 있다.”
―음원과 공연 수익으로 생계가 가능한가.
“정말 힘든 게 사실이다. 방송에서 다뤄진 분들에 비해 아직 인지도가 없는 사람들은 단위가 많이 낮다. 다들 열정과 에너지로 만들어 가는 걸 서로 알기 때문에 ‘이번엔 그냥 커피나 한 잔 사줘’ 하는 식으로 가는 공연도 많다. 그게 생계로 이어질 만큼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티켓 수익을 나누는 공연, ATM
―직접 기획하는 공연 브랜드 ‘ATM’은 어떤 공연인가.
“내가 정기적으로 여는 공연이다. 이름은 내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 ‘어바웃 더 뮤즈(About The Muse)’에서 머리글자를 땄다. 다양한 사람이 한 공연장에서 각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에게도 좋지만 아티스트끼리도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저곳에서 공연을 해 보니 앨범이 나온 분이나 유명한 분이 특정 시즌에 몰려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 사람 공연 궁금하다’ 싶으면 직접 연락해 섭외했다. 매번 나를 빼고 여섯 팀 정도가 나왔다. 열 번째까지 하고 지금 잠깐 쉬고 있는데 8월부터 다시 이어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못해도 60∼70팀은 거쳐 갔을 거다.”
―대관료는 어떻게 맞추나.
“다행히 거의 다 대관료 이상의 수익이 났다. 섭외할 때부터 ‘수익이 나면 그 시점부터 나는 금액은 전원에게 나눠 배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페이를 생각하지 않고 참여한 분들도 ‘나도 공연하면 페이를 받네’ 하는 걸 경험했으면 했다. 그런 시스템이 자리 잡기를 바랐다. 티켓 수익이 대관료를 간신히 넘거나 펑크가 난 적도 있지만 ‘나 어떡하지’ 할 만큼 큰 금액은 아니었다. ‘이번엔 사람들이 바빴나 보다’ 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관객은 많을 때 20∼30명, 적을 때도 10∼20명은 예매하고 와 주셨다.”
◆쇼미더머니의 3초
―쇼미더머니에 참가했다. 남은 게 있나.
“솔직히 없는 것 같다. TV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막 랩을 시작했을 때 더콰이엇 님에게 심사를 받았는데 ‘3초 심사’가 밈처럼 돌던 때였다. 앞에 20명쯤 있었는데 5분도 안 돼 갑자기 내 앞에 와 계셨다. 나도 상처받겠다 싶었는데 3초가 넘어가도 계속 듣고 안 가시는 거다. ‘나 재능 있나’ 하면서 했는데 결국 중간에 끊고 가셨다. 기대하면서도 아쉬웠던 찰나였다. 가장 최근에 나갔을 때는 그동안 많이 굴러서 실력이 늘지 않았을까 싶어 열심히 했는데 또 떨어졌다. ‘내가 너무 못하나’보다는 ‘취향에 안 맞았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쇼미더머니는 정말 긍정적으로 본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이 장르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는 게 씬이 유지되고 활성화되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TV보다는 유튜브 ‘마이크 스웨거’에 나왔을 때 주변에서 오히려 더 행복해해서 신기했다. 부모님은 지금도 ‘그래서 TV엔 언제 나오는데’ 하신다(웃음).”
◆“욕 안 써도 하고 싶은 말 많다”
―가사에 욕을 거의 쓰지 않는다. 왜 이런 가사를 쓰나.
“없는 얘기를 쓰려고 하면 정말 가사가 안 써진다. 결국 써지는 걸 쓰다 보니 평소 생각이 많이 담겼다. 욕을 평소에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가사에까지 굳이 넣어야 하나 싶고, 욕을 안 써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내가 아는 아티스트인데 한번 들어 봐’ 해서 들은 사람이 ‘랩이라 빡셀 줄 알았는데 되게 차분하고 잔잔하니 더 좋다’고 해 주길 기대하는 것도 있다. 신나는 곡이나 욕하는 곡을 억지로 해 본 적도 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보람은 없었다. 우연히 내 노래를 듣다가 ‘왠지 모를 위로가 됐다’고 말해 준 분들이 분명히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자기 가사는.
“‘마이크 스웨거’에 나갔을 때 쓴, 발매는 안 된 곡에 있다. ‘인정받고 싶다면 인정을 먼저 건네고,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먼저 건네.’ 내가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다. 맨날 ‘러브 앤 피스’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그래서다. 누군가 이 말을 듣고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줘 봐야겠다’ 생각하면, 그걸 받은 사람도 ‘나도 해 봐야겠다’ 하는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33년 전 칼럼, 그리고 어머니의 10초
(기자는 1993년 6월27일자 세계일보 ‘설왕설래’ 칼럼을 건넸다. 힙합을 ‘저질 외래풍조’라 부르며 “흑인처럼 꼰 머리를 하고 헐렁한 옷을 입는 유행을 흉내 내지 말아야 한다”고 썼고, KBS가 레게 머리를 이유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연을 막은 것을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한 글이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읽는 세로쓰기 지면을 그는 1분 넘게 읽었다.)
―태어나기 4년 전에 나온 글이다. 어떤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항상 유행의 시작은 ‘저게 뭐야’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반응과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도 ‘난 이게 좋은데’ 하면서 꿋꿋이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새로운 씬을 만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장르와 세대를 넘어 지금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거라고 본다. 지금 시대에 대입하면, 바지를 이만큼 내리고 나가는 아들딸을 보는 부모 입장도 이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새로운 뭔가가 나와도 크게 내용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시작은 항상 그랬으니까. 긍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흐름의 시작점이다. ‘내가 이 시작점을 보고 있네’로 해석하면 다음에 뭔가 나올 때 거부감보다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힙합을 하면서 이런 시선을 느껴 본 적은.
“편견까지는 아닌데, 예전에 일명 ‘짜파게티 머리’라고 레게 머리 같은 걸 했었다. 음악에 관심 없는 친구들도 ‘세관아, 너 되게 독특하다, 100m 밖에서도 알아보겠다’며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정말 싫어하셨다. 그 머리를 하고 신나서 본가에 갔을 때 어머니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만히 10초 동안 내 머리를 보시더니 ‘너 그게 뭐야’ 하셨다. ‘왜, 예쁘잖아’ 했더니 ‘당장 풀고 와’ 하셨는데, 물론 안 풀었다. 고집이 세니까. 부모님 세대가 그런 머리를 일상적으로 봤다면 ‘우리 어렸을 때 하던 머리네’ 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전에 없던 거라 낯설어서 방어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다. 그런데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니까 자꾸 보다 보면 ‘잘 어울리네’가 된다. 1년쯤 지나니 별말씀 안 하시더니, 오히려 머리를 자르고 갔더니 ‘왜 잘랐냐, 전에 머리도 개성 있고 좋았네’ 하셨다. 익숙해지면 사실 별거 아닌 일이 된다.”
◆“자유로움, 그만큼 책임도”
―1990년대 1세대 래퍼들과 지금 세대는 뭐가 가장 다른가.
“1세대 형님들은 저항 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에너지가 기저에 깔려 발산되는 장르였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이것도 힙합이야?’ 하는 얘기가 나올 만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요즘 통용되는 힙합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같다.”
―2026년 한국힙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 단어로는 ‘자유로움’ 아닐까. 예전에는 ‘그게 무슨 랩이야’, ‘왜 라임(운율)이 없어’ 하는 얘기가 있었다면 요즘은 본인이 멋있다고 생각하면 다들 그걸 한다. 경계가 없고 각자 스타일대로 넓어지다 보니 그만큼 자유롭게 표현된다. 다만 자유로운 만큼 본인이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필요하다.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굳이 남을 헐뜯고 싸울 필요까지는 없다. 안 맞는 사람이 있더라도 ‘저 사람 생각은 저렇구나’ 정도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 문화가 그들만의 문화에서 끝나지 않고 더 퍼져 나가려면 거부감이 적어야 하고, 그러려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끈끈히 뭉쳐야 한다.”
―ATM을 하며 만나는 젊은 래퍼들의 고민은.
“‘왜 공연 섭외가 계속 안 들어올까요’, ‘앨범을 내도 반응이 없어요’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공연하러 가서 얻을 수 있는 게 공연만이 아니다. ‘공연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않았냐’고 묻는다. 보러 와 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좋게 본 사람에게 가서 악수하며 ‘공연 너무 좋았다, 다음에 또 보면 좋겠다’고 표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래퍼라고 랩만 해서 되는 시대도 아니다. ‘형, 저는 절대 못 하겠어요’ 하면 집 가는 길에 그 사람 인스타그램을 찾아 DM(쪽지)으로라도 연락하라고 한다. ‘네가 반대로 그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물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럼 먼저 보내 보라고.”
―래퍼를 꿈꾸는 1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그냥 하라고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 해라. 어차피 후회도 네가 하는 건데 안 하고 후회할 거면 하고 후회하는 게 훨씬 낫다. 할 친구들은 한다. 부모님이 ‘랩 하지 마라’ 하면 앞에서는 ‘네’ 해도 밖에 나가 음악하는 친구들을 만나 몰래 할 거다. 욕심이 있고 재미를 느꼈다면 몰래라도 해 볼 만하지 않나. 그러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