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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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靑문서 대량 유출] 외부 노출 않은채 ‘봐주기’ 의혹

의문투성이 검찰 수사
검찰이 이명박(MB)정부 시절 청와대 대외비 문서 715건 유출 사건을 수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청와대 문서 유출 사건을 수사하면서 진행 과정과 결과를 함구한 것 자체부터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외부 노출을 철저히 숨겨오다 이 대통령 임기만료 직전에 피의자 A(48)씨를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로 약식기소한 것도 석연찮은 대목이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A씨로부터 ‘청와대 대외비 문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진술이 맞다면 이는 엄중한 사안이다. 청와대 보고서는 단순 정보수집 문건이라 해도 ‘대통령기록물’이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에 이관하거나 정식 절차를 거쳐 폐기해야 한다. 이를 어긴 사람들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검찰은 무단 폐기에 관여한 A씨 외엔 처벌하지 않았다. 이는 검찰이 2012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수사’ 때 보인 태도와 상반된다. 당시 검찰은 “참여정부 인사들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안을 삭제하는 ‘사초폐기’를 저질렀다”며 대대적인 공개수사에 나서 백종천(72)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58)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참여정부에 적용한 논리대로라면 이명박정부 시절 문서를 빼돌린 전직 청와대 행정관 사건 역시 ‘사초폐기 사건’으로 규정하고 공개수사를 했어야 한다.

검찰은 청와대 정치 사찰 의혹도 수사하지 않았다. 법조계는 청와대가 정치권 동향을 불법 수집한 것이라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사 형평성도 논란거리다. 검찰은 청와대 문서를 무단 반출한 A씨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반면 이 사건과 별개로 현 정부 들어 청와대 문서 17건을 자기 사무실로 옮겼던 박관천(49) 전 행정관에 대해서는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 전 행정관의 경우 업무상 사무실 캐비닛에 넣어둔 것까지 문제삼았지만 A씨는 문서를 유출해 자신의 집에 보관했음에도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외부에 사건처리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폐 의혹이 일고 있다.

김효재(63) 당시 청와대정무수석에 대한 검찰 대응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만약 청와대 대외비 문서들이 불법 정보수집 활동의 결과물이라면 그 문서를 열람한 관계자들 역시 공동정범 혹은 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해당 문건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수석 또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어야 했다.

문서 종착지를 규명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보고서가 작성된 뒤 정무수석에게 전달했다면 그 문건의 종착지는 대통령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나 내사를 한 흔적이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은 국가기강 문란 사태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준모·조현일·박현준 기자 specia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