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77)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4년 9월 강원도 내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치다 20대 여성 경기진행요원(캐디)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 전 의장은 “부끄러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도 “순간적 범행이었다고 해도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인 데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비난 가능성도 크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명령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을’의 처지에 있는 제자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도 있다. 강석진(55)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여학생을 술자리로 불러내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여대생 9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성범죄자에게 엄중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할 검사와 판사들이 되레 성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재경지검의 윤모 부장검사는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을 해 ‘검찰총장 경고’ 처분을 받았다.
지방 법원에 근무하던 유모(30) 판사는 2013년 9월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뒤 대학 후배를 따로 식당으로 불러내 성추행하고 지난해 7월에는 대구의 한 식당과 노래방에서 다른 대학 후배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기소 직후 사표를 냈다.
이처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잘못된 권력의식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윗사람은 깍듯이 모셔야 하지만 아랫사람, 특히 젊은 여성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힘있는 자들의 ‘성갑질’은 결국 ‘나는 성범죄에 연루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권력의식의 발현”이라며 “지도층 인사들이 비뚤어진 권력의식을 내려놓고 법과 국민을 무서워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