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갈 길 먼 '사법통역'] ‘엉터리 통역인’에 두 번 우는 난민들

이집트인 A(32)씨는 가문 간 싸움에 보복 살인의 표적이 돼 난민으로 전락했다. 2007년 삼촌이 돈 문제로 다투던 다른 가문의 사람을 숨지게 했는데 A씨가 복수의 대상이 된 것. 이집트는 살인 피해자 가문이 가해자 가문의 한 사람을 살해하는 악습이 만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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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A씨는 요르단 등을 거쳐 2014년 국내에 들어온 뒤 이듬해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8월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없다’는 이유였다.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이의 신청도 같은 이유로 기각돼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면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적혀 있는 등 조서도 정상적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며 “아랍어에 능통하지 않은 자격 미달의 통역인이 권한을 남용해 통역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A씨의 난민 면접 조서에는 ‘난민 신청서의 난민 신청 사유는 거짓인가’란 질문에 ‘모두 거짓이다’라는 대답이 기재돼 있었다. A씨는 재판 내내 “그런 말한 적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억울해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임수연 판사는 A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민 면접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임 판사는 특히 “원고의 난민 면접 조서에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들이 있고 전반적인 내용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간략한데, 이런 식의 난민 면접 조서가 유독 원고의 난민 면접 통역인 B씨가 참여한 사건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B씨가 통역을 맡은 다른 아랍어권 난민 신청자의 난민 면접 조서에도 난민 신청자가 진술했다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았다. ‘난민 신청 사유는 거짓’이라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번 판결은 ‘사법통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제대로 된 사법통역인의 선발과 교육, 지원 등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역인의 통역 오류가 아니라 난민 심사관의 사실관계 확인 불충분 등 난민 면접 절차상 하자가 인정돼 국가가 패소한 건”이라며 “조만간 A씨에 대한 면접을 다시 실시하는 등 심사 절차를 거쳐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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