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을 되돌아보면 와세다에서의 생활은 지나칠 만큼 자유로운 학문 세계를 만끽했다. 세계적 수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막강한 교수진이 와세다의 첫 번째 자랑이다. 흔히들 게이오(慶應義塾)대학과 사학의 쌍벽을 이룬다지만 와세다는 오늘의 일본을 떠받친 수많은 인재의 산실이다.
와세다는 올해로 개교 123년을 맞이했다. 1882년 선견지명의 선각자였던 오쿠마 시게노부(大隅重信·1838∼1922)가 전신인 도쿄전문학교를 설립한 이후 학문의 독립과 학문의 활용, 모범 국민 양성을 건학 이념으로 해 걸출한 인재들을 길러냈다.
우선 학문의 독립은 자유로운 탐구와 독창적인 연구를 통해 세계적 학문 발전에 공헌한다는 뜻이다. 학문의 활용은 학문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응용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모범 국민 양성은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발전시켜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인격이 함양된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언뜻 어느 대학에나 있는 목표 같아 보이지만, 실제 와세다는 그만큼 학교와 학생들의 의식 폭이 넓다. 일본에서 학풍이 가장 개방적인 대학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개교 당시에는 정치경제학과, 법률학과, 이학과 외에 영문학과가 설치되어 입학생 80명이었던 학교가 현재는 학생 수 5만여명에 우수한 시설을 자랑한다. 개교 이래 졸업생 50여만명을 배출했다.
정·관·재계에 와세다 출신이 많지만 최근에 알려진 인물로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1998∼2000년 재임) 전 총리와 일본 현대소설의 대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꼽을 수 있다. 일본 각계 각층에서 와세다 선배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문 선후배 관계가 어느 대학보다 끈끈한 게 특징이다. 그만큼 서로 아끼는 동문 의식이 유달리 강하다.
와세다의 개방적인 학풍은 전 세계 명문 사립대와의 교류에서 두드러진다. ‘글로벌 유니버시티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사학들과 학생·교수를 교환하면서 학문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다. 와세다에 들어오면 일단 전 세계 유명 대학과 교류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예컨대 세계적인 대학들과 화상을 통한 동시 수업, 저명 학자의 심포지엄이 일상화돼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학생이 특히 많다.
또한 자신이 속한 학부를 뛰어넘어 교양은 물론 전공까지도 다른 학부 과목을 수강해 학점을 딸 수 있다. 내가 속한 상학부는 전공 특성상 남학생만 바글대는 경직된 분위기인 반면 문학부는 지적인 여학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문학부 수업 중 전통연극 가부키를 신청해 들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가부키를 저명 교수의 강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학생 활동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활기차다. 사회 각 분야와 연결된 동아리만 무려 2000개가 넘는다. 문학과 음악, 스포츠, 연극, 영화, 토론회 등 분야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활발한 동아리 활동으로 와세다대 주변 일대는 서울의 대학로처럼 자연스럽게 예술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1996년 나는 한국유학생회 회장을 지냈다. 지금도 그때의 학생회 경험을 통해 한국에 있는 OB들이나 일본에 있는 동창, 후배와 자주 만난다.
최근 학교 측은 국제·교양·전문을 키워드로 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인물을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