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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기 칼럼]잉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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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이스트 가든에서 잉어 치어 몇 마리를 분양 받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잉어를 키우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미국에 살면서 이이들 때문에 금붕어 키우기를 몇 번 시도했었으나 실패했었기에, 언젠가는 한번 금붕어를 보란듯이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해왔었지만, 금붕어보다 훨씬 몸집도 크고 관련 지식도 부족한 잉어를 키우게 되다니!...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연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1년 전부터 이스트 가든에 갈 때마다 잉어에 눈독을 들여왔었다. 그곳의 잉어는 잘 컸고, 번식도 잘했다. 잉어들의 커 가는 모습이 희한하여 알이 부화하여 치어가 생기면 몇 마리 얻어올 것을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내게 다가왔다. 온 몸이 은색인 놈부터, 하얀 바탕에 빨간 무늬, 회색 등 여러 색깔의 잉어를 몇 마리 받아왔다.

잉어를 가져온 날 우리는 가족회의를 했다. 어떻게 키우느냐는 것이었다. 우선 잉어가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했다. 금붕어를 키우던 어항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매일 두 번씩 밥을 줘야 하고, 또 가끔씩 물을 갈아줘야 한다는데.... 이 모두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처럼 매일 ‘바쁘다 바뻐’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잉어 키우기는 사치(?)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어쨌거나 아들녀석이 책상 반 만한 크기의 수족관을 하나 사와서 잉어새끼들을 넣었다. 수족관 안에는 인조 해초와 바위모형, 그리고 한국서부터 가져와서 아끼는 돌들을 넣어주었다. 금붕어도 아닌 잉어를 집안에서 키우게 된 나는 즐거웠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 말고 숨쉬는 물고기 몇 마리가 집안에 함께 있다는 것, 그게 좋았다. 금붕어와는 느낌이 달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어릴적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잉어가 들어온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족관 앞으로 달려가서 밤사이 별 일은 없었는지, 잘 놀고 있는지, 좀 컸는지를 살폈다. 먹이를 하루에 아침저녁 한 번씩 주라고 했는데, 어떤 날은 아무도 주지 않은 줄 알고 모두가 한 번씩 주어서 잉어들에게 하루치를 더 먹이는 날도 있었다. 비만(?) 잉어가 될까봐 겁도 나고 우습기도 했다.

한국에 며칠 간 사이에는 아들녀석이 잉어를 잘 관리해 줬다. 녀석은 배가 곧 터질 것 같이 볼록 튀어나온 흰색 바탕에 붉은 무늬를 한 물고기와 망둥이 같이 생긴 시커멓고 기분 나쁘게 생긴 물고기 두 마리씩을 사다 넣기도 했다. 먹이를 줄라치면 금붕어가 쏜살같이 올라와서 톡톡 입에 물고 신나게 먹는 것에 비해 잉어들은 점잖게 먹이를 찾아 입에 넣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후 잉어란 놈들이 부쩍 크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잉어를 보는 즐거움이 어느 듯 시큰둥해진 가운데 그것들이 우리가 출근한 후나 잠자는 사이 무럭무럭 커서수족관이 비좁아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손가락 두 마디도 안 되는 크기의 잉어를 갖다놓고 저게 언제 크려나 하면서 틈만 나면 수족관 앞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어느새 저렇게 컸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문제는 더 큰 수족관을 놓기에는 리빙 룸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어딘가로 입양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화가 김포선생님의 산장호수였다. 그러나 그곳에 갖다 넣기에는 너무 어려보였다. 그곳엔 독수리같이 큰 새가 와서 잡아먹는지, 낚시꾼이 잡아가는지, 잉어가 가끔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나의 손을 활짝 핀 것 만한 크기의 잉어들을 그곳에 갖다 넣기엔 너무 어린 것 같아서 우선 김포선생님 집에 가져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요즘 남의 집에 보낼 잉어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금붕어 만한 새끼를 보고 키우고 싶어 분양을 받아온 것인데, 너무 빨리 크면서 남의 집에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정 들여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더 깊다는 말을 실감한다.

정이 든다는 것은 생명력 있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당 김태신 화백의 전시회가 끝나 한 3주간 매일 보던 그림이 전시됐던 자리가 텅 비어서 허전하다. 그 중에 이태백이 놀던 강이라는 계림을 그린 수묵화 8폭 병풍그림이 붙었던 빈 벽을 보면 강물과 산, 물에 어린 둥근 달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계림 특유의 둥근 봉우리의 바위산이나 달이 물위에 떠있는 풍경을 담은 이 그림 앞에 서면 내 얼굴도 물에 비칠 것만 같으면서, 자꾸만 그림으로 빠져들어 갔는데...전시회가 끝나도 여전히 아른거렸다. 다행히도 그 그림은 친근한 분이 매입하여서 그냥 돌려보낸 것보다는 훨씬 덜 섭섭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으려니 생각하니 기뻤다.

그림 한 점도 이렇게 마음을 허전하게 하고, 정성껏 키우던 잉어 몇 마리를 남의 집으로 보내야 하는 마음 또한 섭섭하니, 마음에 담았던 정이란 생명이 있고 없고 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키운 것이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 키워서 남의 집에 보내더라도 잉어 키우기는 계속 할 것이다.


김옥기·스페이스월드 관장

<전교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