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쇼트트랙]''파벌''싸움에 전종목 석권 무산

코치다른 안현수·이호석 지나친 승부욕
3000m 결승서 몸싸움끝 둘다 메달놓쳐
“곪았던 종기가 결국 터졌다.”
3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2006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남자 3000m 결승에서 한국선수끼리 다투다 금·은메달을 모두 놓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안현수는 이날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들며 캐나다의 찰스 해믈린을 제치고 이호석마저 따돌리려 대시했다. 그러나 이호석은 안쪽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이때 가속도가 붙은 안현수는 이호석의 허리를 살짝 누르듯 밀었고 순간 이호석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안현수는 남은 직선 주로를 끝까지 달려 1위로 골인했지만 ‘임피딩(밀치기 방해)’ 반칙 판정을 받고 실격 처리됐다. 금·은메달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두 선수의 경쟁심과 욕심은 대회 내내 감지됐다. 이날 1000m 결승에서도 1, 2위를 다투던 둘은 코너에서 살짝 부딪치며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자부 부심을 맡아 이 경기를 지켜본 편해강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마저 “현수와 호석이가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 저러다 큰 일을 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같은 한국선수끼리의 지나친 경쟁은 기형적인 대표팀 운영 때문. 안현수와 이호석은 같은 남자대표팀이지만 지도를 받는 코치가 다르다. 안현수는 박세우 코치, 이호석은 장재근 코치에게서 배운다. 이런 상황에서 일치된 작전이나 협력 플레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구타 사건이 있은 뒤 지난해 여름 진선유와 변천사가 박 코치의 지도를 받던 여자대표팀에서 남자 대표팀의 송재근 코치 쪽으로 옮겨갔고, 안현수는 반대로 박 코치 밑으로 들어갔다. 이는 뿌리깊은 한국체육대학(한체대)과 비(非)한체대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파벌훈련’의 비극이 싹 뜬 것이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에도 두 팀은 따로 움직였다. 훈련뿐 아니라 식사도 각자 할 만큼 별개의 조직이었다. 심지어 자기 소속의 선수가 아니면 어느 방에 묵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러니 결승에 한국선수 2∼3명이 한꺼번에 올라도 팀과 국가를 위한 협력 전술 없이 서로 경쟁할 뿐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쇼트트랙이지만 그 속은 곪아 있다. 하루빨리 팀내 파벌과 기형적인 운영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 쇼트트랙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미니애폴리스=박호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