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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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한권의 책]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

인도 출신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64·여)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식인과 비평가들의 비평문을 통하지 않고 독자들이 그의 저작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로, 스피박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이제야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집자와 역자가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고려했던 부분은 ‘스피박의 이론은 어렵다’라는 인식이었는데, 이런 인식은 한 가지 주제만으로도 쉽지 않은 성이나 계급갈등, 인종차별의 문제 등이 ‘여성’이라는 주체성을 어떻게 교차하며 규정하는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현학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 속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문제, 점점 더 빈곤해지는 우리들의 모습,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인종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이제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다.


가야크리 스피박 지음/태혜숙 옮김/갈무리/3만원

스피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와 문화를 통한 신식민주의가 연장된 후기 식민적 상황에서, 위와 같은 성·계급·인종 문제를 고찰하는 지식 생산이 서구를 보편화하면서 비서구를 식민화하는 식민주의적인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피박 자신을 포함한 탈식민화에 대한 날카롭고 윤리적인 의식을 가진 이론가조차도 “지구적으로 작동되는 거대한 ‘교육기계’ 안에서”는 “‘제국주의적 인식의 폭력’에, 지구적 지배전략들에 공모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더욱 깊게 고찰해야 한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직면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거대한 교육기계 안에서 그 바깥을 사유하려는 노력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음을 철학, 문학, 영화, 미술 등을 통해 이 책 전반에 걸쳐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또한 독자들은 부록을 활용하여 스피박이 제시하는 활로에 안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 정 민
갈무리 책임편집출판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