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제작기획사 DR뮤직의 윤등룡(48) 대표는 한류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숨은 공로자다. 가요계에서 그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와 함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윤 대표는 여성 5인조 댄스그룹 ‘베이비복스’를 탄생시켜 1990년대 말부터 중국 등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국의 음악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온 한류 1세대다. 최근에는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비보이(B-boy) 댄스팀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한류문화 보급의 또 다른 주역으로 키워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에 있는 DR뮤직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수수한 청바지 차림에서 내로라하는 기획사 사장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어요.”
윤 대표는 경북 상주의 한 시골학교 축구선수였다. 1978년 청소년상비군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인천대 2학년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왼쪽 다리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뒀다.
그 후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다가 가수 최백호를 우연히 알게 돼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음반제작사업에 뛰어들어 ‘11월’ ‘빛과 소금’ ‘스트레인저’ 등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길러냈다.
“음악의 뿌리는 록이잖아요. 당시 밴드음악을 만들면 노래는 분명 히트했는데 수익은 생기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7∼8년 음반제작을 하다 보니 돈도 많이 까먹었습니다.”
그는 밴드음악 제작을 그만두고 97년 미모와 댄스실력을 갖춘 여성 5인조 그룹 ‘베이비복스’를 탄생시켰다. 당시 대중음악계는 SES, 핑클 외에 여자그룹이 별로 활동하지 않았던 때다.
“베이비복스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대중 정부 시절 IT산업과 인터넷 강국을 만들기 위해 벤처기업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시점에서 음악시장이 디지털 환경으로 바뀌면 음반판매는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아시아시장을 개척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윤 대표는 다른 기획사와 달리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170㎝가 넘는 훤칠한 아이들로 베이비복스 멤버를 구성했다. 남자처럼 무대에서 파워 있게 보여야 아시아 음악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윤 대표는 99년 12월 베이비복스를 중국무대에 처음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고 2000년 들어서 태국 베트남 대만 등 아시아 전역에서 한류바람을 거세게 일으켰다.
그는 2004년 베이비복스 해체 후 가수 비의 해외 프로모션을 대행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해외시장에 내세울 만한 또 다른 한류문화를 찾던 중 비보이들을 발견했다. 이 춤이야말로 아시아에서 또 한번 한류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처음에는 부모 말도 안 듣고 말썽 피우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을 피해 비보이 춤을 추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너무 순수하고 춤에 대한 자긍심이 커 놀랐어요.”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지난해 5월 계약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비보이 춤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DR를 통하면 어디에서든지 공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뒷골목 춤꾼들을 모아 ‘갬블러’라는 팀을 만들어 아시아는 물론 유럽을 평정했고 최근에는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 대륙까지 정복하며 한국의 비보이 춤을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았다.
윤 대표는 “한국이 비보이 춤의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만한 게 없다”며 “내년에는 아시아지역 아카데미 학원을 설립하고 국내에서 이름있는 세계대회를 유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비보이 춤과 연계된 세계적인 뮤지컬을 만들어 내년 6월쯤 선보일 예정”이라며 “비록 비보이 춤이 할렘에서 시작됐지만 우리 문화로 둔갑시켜 세계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덧붙였다. 갬블러는 이달에만 전 세계 12개국을 돌아다니며 비보이 춤과 국악을 접목시킨 공연을 펼쳤다.
윤 대표는 “갬블러가 가는 곳마다 신기해하고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며 “한류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비보이 춤이 한류 포스트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DR뮤직 주최로 열린 중국대회에서 공연을 본 중국인들로부터 “한국에서 갬블러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아마 못 느낄 거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인으로서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그는 전했다. 윤 대표는 베이비복스 2기를 곧 출범시켜 또다시 한류 선봉에 나설 작정이다. 그는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항상 단원들에게 주지시킨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글 추영준, 사진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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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전파 숨은 공로자 윤등룡 DR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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