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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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 "숭례문 화재 등 한국사회 잠재된 '위험' 보여줘"

한국 온 '위험사회' 저자 獨 울리히 벡 교수 부부
◇‘위험사회’의 저자인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가 31일 서울대학교 문화관 중강당에서 ‘위험에 처한 세계: 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를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하고 있다.
송원영 기자
“숭례문 화재사건은 한국 사회에 잠재하고 있는 ‘위험(risk)’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위험사회’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가 우리 사회에 내린 진단이다. 

서울대 초청으로 아내 엘리자베스 벡 게른샤임(에를랑겐대)과 함께 한국을 첫 방문한 울리히 벡은 31일 서울대 공개 강연에서 “국가 정체성 상징물인 숭례문을 (방화)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불편을 느끼거나 좌절감을 느꼈다는 의미”라며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울리히 벡은 태안 기름유출 사고와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이론을 곁들여 설명했다.

그는 “서로 다른 기관 사이에 만연한 불신과 책임회피 등 사회 체계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며 “압축적인 근대화 속에 담긴 위험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대표적인 사회학자답게 울리히 벡은 강연 첫날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위험에 처한 세계: 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근대성은 단순히 인간 이성의 진보와 사회 발전으로 요약되지 않는다”며 “근대성에 내재한 재난과 사고 등의 위험요소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스 벡 게른샤임 부부.

근대화 초기에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제공됐지만 사회가 진화할수록 위험 요소가 더 커진다는 게 울리히 벡의 진단이다. 이러한 위험으로는 작은 사고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재앙, 이혼 증가와 저출산에 따른 가족의 변화, 실업과 금융대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위험은 산업이 발달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후진국에서만 발생하는 게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닌 일상적인 위험으로 다가온다.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 이론을 내놓은 때는 1986년이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근대화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던 시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의 이론이 주목을 받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사고를 경험한 한국 사회학계가 그의 비판 이론을 탈이념 시대의 대안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다.

최근 그의 이론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위험과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 12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비롯해 올해 발생한 숭례문 화재 참사와 새우깡 파동 등의 위험사회 징후를 경험하면서 논의가 심화한 것이다.

울리히 벡은 이날 강연에서 남북관계의 속성을 짚어내며 “독일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내라”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 관련 이슈는 근대화와 경제 문제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위협을) 예견할 때 신중해야 한다”며 “위협이 크게 느는 것을 경계하고 국제 정치를 매개로 이를 줄이거나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독일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독일은 통일을 과소평가해 높은 실업률과 경제침체 등 수많은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전했다.

울리히 벡은 이날 서울대 공개 강연을 시작으로 각종 강연과 토론에 참가한 뒤 5일 출국한다.

한편 ‘사랑은 지독한 혼란’이란 저서로 반향을 일으켰던 엘리자베스 벡도 1일과 2일 각각 서울대와 한양대에서 공개강연을 갖는다. 엘리자베스 벡은 이들 강연을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사회적 성찰, 국제결혼 이주여성 문제의 쟁점과 맥락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울리히 벡 부부 학술 행사 일정
울리히 벡
3월 31일(월) 오후 2시 서울대 공개 강연 위험에 처한 세계: 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
4월 1일(화) 오전 9시 서울대 전문가 워크숍 위험사회와 성찰적 근대화
4월 2일(수) 오전 10시 경희대 공개 강연 위험사회를 넘어: 코스모폴리탄 근대성 이론
  오후 1시 30분 경희대 국제심포지엄 위험사회를 넘어: 동아시아로부터의 성찰
4월 4일(금) 오후 4시 프레스센터 시민사회와 대화 한국의 시민사회와 성찰적 근대화: NGO 역할 재조명
엘리자베스 벡 게른샤임
4월 1일 오후 2시 서울대 공개 강연 사랑과 가족에 대한 성찰: 지구화와 개인화는 어떻게 우리의 개인적 삶을 변화시키는가
4월 2일 오후 2시 한양대 세미나 국제결혼 이주여성: 쟁점과 맥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