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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S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4월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합동경제위원회에서 미국과 세계경제 상황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버냉키 의장은 최근 미국 연방기금 금리를 결정하는 전통적인 FRB의 의장 역할에 그치지 않고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는 지난 15∼16일 미국 의회에 출석해 국책 주택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에는 투자은행인 JP모건 체이스가 경쟁사인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때 FRB가 약 30억달러(3조원)의 보증을 서도록 결정했으며, 모든 투자은행에 긴급자금을 풀었다.
미 언론들은 그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 연방정보제공법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블룸버그 통신은 22일 연방정보제공법에 따라 버냉키 의장의 일정 공개를 청구해 그가 지난 5월 포드자동차의 앨런 멀럴리, 셰브론의 데이비드 오라일리, 시티코프의 비크람 팬디트 등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및 경제전문가들과 회동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인 FRB가 법적으로 금융 안정과 관련한 권한을 보장받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FRB가 금융 안정에 대해서도 책임질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버냉키 의장은 FRB가 새로운 책임에 합당한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법적인 지위 보장을 요구했다.
그동안 FRB는 중앙은행으로서 오랫동안 물가 안정과 낮은 실업률 유지라는 두 가지 임무를 위임받았으며, 금융시장 안정 유지는 비공식적 역할이었다. 법적 개선이 이뤄지면 FRB는 공식적으로 세 가지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FRB가 위기를 예방하는 데 실패할 경우 경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 수호자로서의 기관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 기관이 금융 안정 기능과 가격 안정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게 적합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FRB의 역할 확대가 중앙은행으로서의 정치적 독립에 위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FRB가 은행 및 다른 금융기관들에 대한 통제임무를 맡으면 통상적인 정부기관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과 FRB 핵심 인사들은 금융 안정에 대한 책임은 통화정책을 만드는 것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이 두 가지 역할이 보완작용을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은 20세기 초 금융 패닉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으며, 이후에 통화공급관리자 역할까지 해왔다.
버냉키 의장은 1953년 12월13일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저하게 유태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약사였던 아버지 필립은 파트타임으로 극장관리인 일을 했으며, 어머니 에드나는 교사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약국을 공동운영했는데, 이는 할아버지 조나스 버냉키로부터 공동구입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1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다가 1940년대에 뉴욕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딜론으로 이사했다.
세 자녀 중 맞이로 태어난 버냉키는 어릴 때 히브리어교사였던 외할아버지 해롤드 프리드먼으로부터 히브리어를 배웠다. 딜론 고교를 다녔던 버냉키는 천재로 통했다. 미적분학을 혼자서 공부했으며 교지를 편집했다. 졸업식장에서 학생대표로 고별사를 읽었고,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최고점수인 1590점(16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는 또 고교 마칭밴드에서 색소폰을 불었는데 주 전체 대표주자이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하버드대에 진학한 버냉키는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딜론 인근에 있는 교통요충지 ‘사우스 오브 더 보더’(South of the Border)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썼다.
그는 1975년 하버드대를 최우수로 졸업한 뒤 1979년 MIT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탠포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뉴욕대의 방문교수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종신교수가 됐다. 1996∼2002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과장을 지내면서 ‘아메리칸이코노믹리뷰’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버냉키는 2005년 7월1일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2002∼2005년 FRB 이사를 겸직했던 그는 2006년 1월 FRB의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말 그의 총재산은 25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그의 봉급은 19만1300달러이다.
경제논문 데이터베이스인 IDEAS/RePEc에 따르면 그는 세계 50대 경제학자에 속한다. 버냉키는 대공황의 경제 및 정치적 원인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 광범위하게 집필했다. 거시경제학 저서 3권과 미시경제학 저서 한권을 썼다.
그는 2002년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하자 “법정 불환지폐 시스템(a fiat money system)에서는 정부가 돈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수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더욱 많은 돈을 발행함으로써 언제나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디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헬리콥터로 돈을 경제에 떨어트리면 된다는 이론을 펼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발언을 인용했는 데, 이후 그에게 ‘헬리콥터 벤’ 또는 ‘헬리콥터 인쇄기’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는 연설 말미에 “인플레이션이 정부 부채의 실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면서 “따라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보다 이념적으로 덜 엄격하고 정치적 문제에 비중을 두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적자 감축 계획과 부시 대통령의 세금 감면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반면, 버냉키 의장은 세금 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입을 닫아버리곤 한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론 폴 하원의원(하원 은행위원회 소속)은 버냉키 의장이 이자율을 계속 낮추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FRB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 낮은 이자율로 인해 갑작스런 인플레이션이 촉발되고 불필요한 통화공급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30일 버냉키 의장이 2006년 중반 경제가 악화될 것으로 생각해 이자율 인상 요구에 반대했는데, 만약 그가 당시 반대론자들의 말을 들었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수개월간 버냉키 의장의 결정으로 전 세계 경제가 대재앙을 피하면서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와 미 의회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제 FRB가 광범위한 책임을 떠안으면서 통화 관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앙은행으로서의 신뢰마저 무너트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할지 버냉키 의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워싱턴=한용걸 특파원 icykarl@segye.com
■벤 S 버냉키 FRB 의장
▲1953년 12월13일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유태인 가정 장남으로 출생
▲1971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딜런고교 졸업 때 주내에서 SAT 최고 득점
▲1975년 하버드대 최우수 졸업
▲1979년 MIT대학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9∼1985년 스탠포드대 비지니스대학원 강의
▲1985년 뉴욕대 방문교수 및 프린스턴대 교수 임용
▲1996∼2002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과장 임명
▲2002∼2005년 FRB 이사 임명
▲2005년 7월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임명
▲2006년 1월 FRB 의장 취임
▲1953년 12월13일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유태인 가정 장남으로 출생
▲1971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딜런고교 졸업 때 주내에서 SAT 최고 득점
▲1975년 하버드대 최우수 졸업
▲1979년 MIT대학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9∼1985년 스탠포드대 비지니스대학원 강의
▲1985년 뉴욕대 방문교수 및 프린스턴대 교수 임용
▲1996∼2002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과장 임명
▲2002∼2005년 FRB 이사 임명
▲2005년 7월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임명
▲2006년 1월 FRB 의장 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