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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세계 정상들 ‘선물 외교’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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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상대방 이름 새겨넣은 선물로 친분 강조
獨 메르켈은 ‘머그잔’으로 터키와 외교 갈등도
후진타오 동물·사우디 국왕 고가 선물로 유명
영국 속담에 ‘선물은 우정을 따뜻하게 지켜 준다(Presents keep friendship warm)’는 말이 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정상들도 선물을 주고 받는다. 국익을 위해 건네는 선물 속에는 남다른 친밀감이 담겨 있기도 하고 드러내지 않았던 섭섭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때때로 정상들이 주고받는 선물은 뜻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정상들의 ‘선물 외교’ 백태를 들여다 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2006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1인승 최첨단 이동기구 세그웨이를 타고 총리 관저로 출근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선물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주고받는 선물의 가지 수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그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기업인 등 일반인이 보내오는 선물까지 합하면 부시 대통령은 한 달에 최대 1000개의 선물을 받는다.

부시 대통령은 ‘주는 선물’ 때문에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그는 개인적 친분과 교감을 강조하는 선물을 많이 했는데, 재임 중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에게는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 투어를 선물하는가 하면 음악을 마음껏 즐기도록 주크박스도 선사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성 팬임을 감안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선물에 상대 정상의 이름까지 새겨 넣어 친분을 강조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에게는 이름표를 꿰맨 항공점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이름을 새긴 골프백을 선물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받은 선물’과 관련해 일화가 많다. 블레어 전 총리가 받은 선물 가운데는 기타가 많다. 그가 학창시절 밴드로 활동했던 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비센테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과 루마니아 정부, 팝스타 브라이언 애덤스 등이 최고급 전기기타를 선물했다. 하지만 블레어 전 총리는 외국 정상들로부터 받은 고가의 선물 일부를 몰래 처분하려 했던 사실이 보도돼 한바탕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에게 이름까지 새겨 선물한 가죽 재킷. 브라운 총리는 나중에 이 선물을 소장하길 거부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선물 가운데는 생물(生物)이 많다. 후 주석은 최근 일본과 대만 등에 중국에만 서식하는 희귀동물 판다를 잇달아 선물해 ‘판다외교’, ‘동물외교’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한국에도 1994년과 2005년 두 차례나 백두산 호랑이를 기증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는 희귀새 따오기를 선물로 안고 방한했다.

‘통 큰’ 선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이 유명하다. 그는 2003년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에게 9만550달러(약 1억원)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세트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는 2만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장신구를 각각 선물했다. 부시 대통령에게도 1000만원대 고급 시계를 줬다.

정상들의 선물이라고 해서 모두 비싸고 귀한 건 아니다. 최근 프랑스를 방문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부르니에게 소박한 스카프 한 장을 건네줘 외신의 이목을 끌었다. 니르말 데쉬판데 인도 국회의원은 2006년 부시 미 대통령에게 인도의 정신적 지주인 마하트마 간디의 가르침이 적힌 7달러짜리 장식줄 한 개를 선물했다.

정상들의 선물이 외교 갈등을 초래한 경우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07년 3월 퇴임을 앞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선물한 18세기 머그잔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머그잔에 1799년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나폴레옹에게 패한 역사가 묘사됐다며 터키 정부가 발끈했기 때문이다. 터키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당시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지한 시라크 대통령에게 항의의 뜻을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에는 중국 정부가 대만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뜸 “판다를 선물하기로 했다”고 공표해 양측 외교당국이 얼굴을 붉혔다.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감정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중 앙숙지간이었던 부시 대통령에게 일반인이 쓰는 130달러 상당의 애프터쉐이브 로션 세트를 선물로 전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6년 이라크에서 일방적 군사작전을 강행해 난관에 봉착한 부시 대통령에게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메시지가 담긴 손자병법을 선물해 무언의 항의를 전달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005년 한국에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두만(수컷)과 압록.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상들이 주고받는 선물은 대부분 국고에 귀속된다. 미화 285달러(약 31만원)가 넘는 고가의 선물은 모두 신고해야 하는 미 대통령들은 대부분의 선물을 국가 기록물 보관소에 맡기거나 퇴임 후 자신의 기념관에 보낸다. 일본은 총리가 재임 중 받은 선물 가운데 가치가 2만엔(약 20만원) 이상인 것은 총리 관저에 보관하도록 돼 있다.

영국은 공직자 윤리 규정상 140파운드(약 28만원)가 넘는 고가 선물은 모두 신고해야 하고 이는 국가 재산으로 귀속된다. 영국 총리는 받은 고가 선물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려면 물건 값(140파운드 초과분)과 부가세, 수입관세를 물어야 한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부시 대통령이 준 가죽재킷의 개인 소장을 거부해 ‘부시 굴욕’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