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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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시급한 공룡 '지방행정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고비용·저효율 낡은 틀… 국가경쟁력 발목
17대 국회에서 좌절됐던 지방행정체제 개편작업에 재시동이 걸릴 조짐이다. 광역시·도와 시·군·구, 읍·면·동으로 세분화·중층화해 광역화한 21세기 행정에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 구조라는 평가가 그 이유다. 이 체제는 일제강점기에 기본틀이 형성돼 100여년 유지된 ‘낡은 유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체제에서 토호세력들의 이권다툼장으로 전락한 상당수 지방의회의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지방행정체제의 문제점과 개편 전망, 효과를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충남 청양군은 2009년도 도민체전 유치를 계기로 195억원을 들여 체육관을 신축하고 있다. 107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공설운동장 리모델링 공사도 한창이다. 도민체전을 치르기 위한 시설투자라고는 하지만 인구 3만명 남짓에 재정자립도는 15%에 불과한 청양군에 걸맞은 사업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충남 공주시는 건립 중인 청소년문화센터 인근에 61억원을 들여 기능이 유사한 청소년수련관을 건립하다 감사원으로부터 중복투자 사례로 꼽혔다. 2006년 감사원 감사에서는 경기도 고양시 등 27개 시·군에서 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로 종합운동장을 건설하는 바람에 10개의 월드컵경기장 중 서울을 제외한 9개 경기장이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치단체 간 경쟁적 중복투자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 행정도 문제다.

경북도와 환경부는 경북 지역을 3∼4개 권역으로 나눠 광역상수도를 설치할 계획이지만 지자체별 입장이 달라 차질을 빚고 있다. 그 사이 상수도 관리 인건비는 매년 증가해 수돗물 생산비가 t당 720원선에 이르고 있다. 반면 수돗물 요금은 t당 520원에 지나지 않아 상수도 운영 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 또는 자치단체 상호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지역 갈등을 유발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전북의 숙원인 새만금사업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광주·전남의 J프로젝트 등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전남·북의 지역 갈등으로 비화됐다.

지방행정 구조의 난맥상은 주민 수는 계속 감소하는데도 공무원 수는 증가하는 어이없는 현상을 낳고 있다.

감사원이 2006년 표본조사한 48개군 중 경북 영덕군 등 39개군은 2년 동안 인구가 10만여명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공무원은 오히려 1200여명 증가했다.

지방의회의 경우 전북도의회의 지난해 의원발의 건수는 고작 3건에 불과, 의원 1인당 발의 건수가 0.08건으로 전국 16개 광역의회 중 꼴찌였다. 조례 한 건을 발의하는 데 5억1528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내 14개 시·군 기초의회도 전체 의원발의가 70건으로, 의원 1인당 발의 건수가 0.36건에 그쳤다. 이는 지역구가 너무 협소한 데다 도의회와 시·군의원 간 활동이 겹친 것도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시간적·지리적 거리가 단축된 마당에 다단계 행정계층으로 인력과 예산, 시간 낭비가 많다”며 “21세기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시·군·구를 통합해 광역화한 뒤 실질적인 지방분권체제를 통한 지방역량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목원대 권선필 교수(행정학)는 “현재의 행정구역은 크게는 지역감정, 작게는 지역 간 이기주의와 맞물려 공공편익 시설뿐 아니라 화장장, 쓰레기매립장 등 혐오시설의 중복투자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상당수 농어촌지역 자치단체들은 신규 사업이나 공공서비스를 중단해야 할 정도의 재정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남규, 대전·전주=임정재·박찬준 기자 coolm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