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파문이 처음 대두된 지 2주가 넘었음에도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중국의 유제품 관리 유통에 허점이 드러나는 등 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멜라민 분유' 파문을 촉발한 싼루(三鹿)사의 제품에서 유해성 세균인 사카자키균이 검출돼 총체적 부실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중화권과 동남 아시아에 이어 유럽, 미주, 아프리카 등 전 세계적으로 멜라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싼루사와 지방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파문의 진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늑장 대처해 파문을 키웠고 중국 당국 역시 올림픽을 앞두고 사건을 쉬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유엔총회에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분유 사건에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사실상 국제 사회에 사과했다.
◇ 멜라민 분유 공포 전세계 확산 = 5만4천여명의 어린이들에게 피해를 입힌 중국산 멜라민 분유 공포가 아시아는 물론 미국,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23일 현재까지 중국산 유제품 수입을 금지한 나라는 최소 8개국으로, 피해 아동이 나타난 홍콩부터 심지어 아프리카 케냐에 이르기까지 중국발 멜라민 분유 파동이 확대되고 있다.
요구르트, 과자, 사탕 역시 공업용 화학물질인 멜라민에 오염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와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산 식량 수입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홍콩에서는 2명의 어린이가 신장 결석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고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방글라데시,캄보디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은 중국산 유제품에 대해 수입 및 판매금지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부룬디,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중국산 유제품들을 리콜하거나 판매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호주, 뉴질랜드와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서방 각국에서도 중국산 식량수입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고 문제가 된 제품을 회수하는 등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 사카자키균 검출, 총체적 부실 의혹 = 싼루사의 제품에서 영유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세균인 사카자키균까지 검출됨으로써 이 회사를 비롯한 중국 분유업계의 총체적 관리 부재 의혹이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도 이처럼 멜라민 분유에다 세균 분유까지 버젓이 유통된 사실이 확인되자 이례적으로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의 관리 부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쑨정차이(孫政才) 농업부장은 "원유 생산 중간단계에서의 정부 당국의 관리는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면서 관리 소홀을 인정하고 "앞으로 모든 우유 저장창고를 정부에 등록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을 실시함으로써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유제품 업체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유통망을 통해 낙농가로부터 우유를 공급받아온 것으로 나타났고 우유를 저장하는 창고를 등록하고 제대로 감독하는 기구가 없어 문제는 이미 예견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JL 맥그래거의 브레이안 위 연구원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며 기업과 생산지를 연결하는 유통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 농업부는 22일 공안부와 위생부 등과 공동으로 통지문을 발표해 모든 유제품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우유 저장창고에 대한 등록과 철저한 조사에 착수키로 했으나 '사후약방문'이 아니냐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 원자바오 총리 고개 숙여 =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원 총리가 미국의 우호단체가 마련한 환영 연회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사실상 고개를 숙였다.
원 총리는 500여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소비자와 어린이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사회적인 악영향을 끼친 데 대해 중국 정부의 책임자로서 매우 참담함을 느끼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원 총리는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실패를 통해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중국 제품 특히 식품이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수입국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더욱 철저한 관리를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 싼루사와 지방정부의 진상 은폐 및 늑장 대처 = 제조사와 지방정부가 파문의 진상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사건을 쉬쉬하면서 화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조사단의 공식 조사 결과, 싼루사가 멜라민 분유에 대해 작년 12월부터 거짓말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5만명이 넘는 영아들이 신장결석에 걸리고 4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특히 싼루사 본사가 소재한 스자좡(石家庄)시의 고위 관리들은 지난 8월2일 싼루사로부터 멜라민 분유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나 상부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스자좡시 당국이 멜라민 분유 파문을 1개월 이상 은폐한 것은 올림픽 개막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사건을 터뜨리면 중국의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가 과연 이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외신 기자는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올림픽을 위해 중국 정부가 사건을 은폐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고 베이징의 외교소식통도 "정황상으로 보면 중국 정부가 올림픽 기간에 이같은 사태가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숨기려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 문제 분유업체들 주가 폭락 =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중국 최대 유제품 업체인 멍뉴유업(蒙牛乳業)의 주가가 폭락했다.
멍뉴의 주가는 23일 홍콩 H증시에서 20.00 홍콩달러로 장을 시작한 뒤 무려 60.25%가 폭락한 7.95홍콩달러로 장을 마쳤다.
멍뉴는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인 `멜라민'이 함유된 우유를 생산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지난 17일 거래가 정지된 후 6일만에 거래를 재개했으나 하루만에 주가가 `반토막'난 것이다.
또 이리(伊利)그룹도 상하이증시에서 전날 9.93위안으로 일일 최대치인 10%가 폭락했다. 광밍(光明)그룹의 주가도 일일 최대치인 10%가 폭락해 4.03위안으로 장을 마감했다.
중국의 증시 전문가들은 멍뉴를 비롯한 문제 기업의 주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어 사건이 진화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임을 예고했다.
<연합>
원자바오 총리 "참담함 느낀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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