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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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수십조 피해 ‘사금융 공화국’

‘금융 사각지대’ 유사수신 행위 뜯어보니
#1. 지난해 2월 서울 구로구에 무허가 회사를 세운 곽모(39)씨는 외환거래에 투자하면 원금 보장은 물론 매월 6∼10% 배당금과 추천 수당을 주겠다고 속여 투자자 3500여명한테서 3000여억원을 가로챘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곽씨가 약정한 배당금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곽씨는 지난 5월 투자자들 고소로 경찰에 구속됐다. 투자자들은 투자금 일부라도 건지기 위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2. 2006년부터 서울 강남 계모임 ‘다복회’를 운영한 윤모(51·여)씨는 최근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윤씨는 지난 2년간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2000억원 상당의 낙찰계를 운영하며 계원 146명에게 납입금 370억원을 받아 약속한 곗돈을 주지 않고 있다.

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한파 속에 금융기관보다 높은 이자를 주겠다면서 투자금을 받아 가로채는 유사수신업체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피해는 서민과 중산층은 물론이고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사회지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다복회’와 ‘한마음회’도 일정 시점에 일정한 이익을 보장한 점에서 유사수신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사수신 행위 4년 새 2배 급증…‘사금융 공화국’=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유사수신 행위 발생건수는 501건이며, 연말까지 600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로는 2004년 306건, 2005년 317건, 2006년 435건, 2007년 485건이었다.

유사수신 행위는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한 사람이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을 투자하는 점에 비춰 피해액만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기관보다 높은 이자를 준다는 말로 투자자를 현혹하는 유사수신 특성상 피해자는 서민, 중산층, 부유층까지 전 계층이 망라돼 있다.

특히 서민 피해는 막심하다. 최근 외환선물거래에 투자해 높은 배당금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자녀의 대학 등록금으로 모아 둔 5000만원을 투자했다는 문모(52·여)씨는 “지인으로부터 매달 8%의 배당금을 준다는 말에 속아 투자했지만 이자가 나온 건 한 번뿐이었다”며 “등록금 때문에 전세에서 월세로 집을 옮겼는데, 사채까지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부 업자들은 투자자를 데려오면 소개료를 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피해를 확산하고 있다.

◆“귀족계도 사실상 유사수신”=그동안 수사기관은 이른바 ‘귀족계’를 유사수신 행위에 포함하지 않았다. 친목모임 특성과 낙찰계의 경우 계원들이 순차적으로 낙찰을 받는 형식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귀족계’의 경우 장래에 출자금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받기 때문에 유사수신 행위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돈을 모아 단순히 식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전통적인 계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축은행 관련법상 계를 운영할 수 있는 저축상품 등이 있는 상황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계를 운영하는 것은 유사수신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다복회’와 마찬가지로 ‘한마음회’ 계주 이모(55·여)씨가 운영한 59계좌 대부분이 한 달에 1500만원씩 10개월가량 곗돈을 부으면 2억원을 지급하겠다고 계원을 모았다는 점에서 유사수신 행위가 될 수 있다.

◆부도 때 계 피해구제 막막=유사수신 행위는 업주 등이 형사처벌되더라도 피해자들이 원금을 돌려받기가 매우 힘들어 피해가 거의 구제되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사례를 보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 돈을 먼저 들어온 투자자 배당금으로 주거나 업체 대표가 돈을 빼돌린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높은 이자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므로 투자 시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귀족계’의 경우 유사수신 행위인데도 계주들이 아무 제약 없이 ‘문어발식’으로 계를 키우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수사기관이 나서는 점도 문제다.

불법성을 따져 적극 수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임윤태 변호사는 “일본처럼 낙찰계 등을 원천 봉쇄하거나 법적 처벌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미봉책이지만 계주가 만들 수 있는 계좌 수를 한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귀전·장원주 기자 frei5922@segye.com

◆유사수신행위=법률상 유사수신행위는 은행, 저축은행 등과 달리 인·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 여기에는 ▲출자금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받는 것 ▲원금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예금·적금 등 명목으로 돈을 받는 행위 ▲발행가액 또는 매출가액 이상으로 재매입할 행위을 약정하고 사채를 발행하거나 파는 행위 ▲경제적 손실을 금전 또는 유가증권으로 보전해 줄 것을 약정하고 회비 등 명목으로 돈을 받는 행위가 포함되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는 ‘강남 귀족계’는 손해 걱정없이 일정액이나 일정 기간이 되면 일정한 이익을 주겠다며 돈을 모으는 행위로 해석돼 넓은 의미의 유사수신 행위라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