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2009 국제분쟁지역 진단] ⑦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600년 인종·종교 갈등…독립 1년만에 또 불거져
올 들어 알바니아·세르비아계 분쟁 잇따라
새해 벽두부터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작년 2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뒤 한동안 잠잠했던 폭력사태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코소보 북부 이바르강을 사이에 두고 다수 알바니아계와 소수 세르비아계가 대치하는 분단 도시 미트로비차. 이곳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자동차 8대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가 알바니아계 소행이라고 판단한 일부 세르비아계 주민은 알바니아계 소유의 상점 2곳에 불을 지르며 보복에 나섰다. 인근 지역에서는 또 다른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진화에 나선 소방대원이 다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도 한 세르비아 남성을 흉기로 찌른 알바니아계 청년 2명이 체포됐다. 동부지역에서는 무장 괴한이 세르비아계 주민의 가옥에 11발의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폭력사태가 심상치 않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은 코소보 북부에 두차례에 걸쳐 병력을 증파하기도 했다. 오는 2월 코소보 독립 1주년을 앞두고 양측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폭력사태도 빈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6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세르비아인들은 14세기 무렵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던 코소보를 성지로 여긴다. 1389년 오스만투르크와 벌인 전쟁에서 10만명이 넘는 세르비아인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패배한 세르비아인은 북쪽으로 쫓겨났고 알바니아인들이 정착했다.

현재 코소보 주민의 90%는 알바니아계(이슬람교)다. 세르비아계는 동방정교의 분파인 세르비아정교를 믿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급기야 대학살극으로 비화됐다. 알바니아 게릴라 조직이 1990년대 중반부터 세르비아 공격을 강화하자 유고연방 정부군이 군대를 동원해 무력진입에 나섰던 것. 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1998∼99년 알바니아계 주민 1만명 이상을 학살하고 80여만명을 추방하는 잔인한 ‘인종청소’를 했다.

나토가 99년 3월부터 78일 동안 코소보 공습을 감행하고 나서 사실상 유엔 보호령으로 편입한 후에야 코소보 비극은 간신히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작년 2월,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3개월 뒤인 5월 총선을 거쳐 친서방·EU 가입을 표방하는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친유럽 연정’을 구성했다.

지난달 초에는 EU가 유엔을 대신해 경찰, 사법, 세관 요원 2000명으로 구성된 코소보 민간임무단(EULEX)을 코소보 전역에 파견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코소보 독립을 둘러싼 분쟁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계 간 오랜 갈등의 골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어 쉽사리 평화 공존의 해법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주춘렬 기자 clj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