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청년에게 희망이 없으면 그 사회 전체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비록 현재는 힘들어도 넘치는 패기와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처럼 들끓는 자부심만 살아있어도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지금 한국사회의 청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에 빠져 있으며,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까. ‘산업화 시대’에 20대를 보낸 ‘청년작가’ 박범신(63)씨와 대학 재학 중 문단에 나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신예작가 김사과(25)씨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뻘 되는 세대의 청년기와 요즘 청년들의 모습을 대비하면서 무엇이 달라졌고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모색해본다.
―산업화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은 6·25전쟁 전후에 태어나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고, 청년기에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상명제에 매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개발독재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외쳐야 했던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요즘 청년들은 대체로 1980년대에 태어나 선배 세대들의 노력으로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성장기를 지나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사회에 진출해야 되는 시점에서는 전혀 면역력이 길러지지 않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다른 배경을 지닌 두 세대가 각각 생각하는 청년상은 어떠할지, 얘기를 시작해보지요.
▲김사과(이하 김)=선생님의 소설 ‘더러운 책상’(열여섯 살에서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박범신의 성장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두 시대 청년의 고민이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어 갑갑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청년의 고민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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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범신 |
―정체성 문제도 그렇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민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요즘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취업문제일 것 같은데요.
▲박=우리 때는 사는 게 힘든 만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도 절실했습니다. 사과씨 세대는 분명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보다는 연봉이나 다른 조건들에 더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젊은 날은 어떤 절대성이 지배했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상대성이 지배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사과씨 세대가 더 쓸쓸하고 허전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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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과 |
▲박=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은 이해하지만, 불만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세대에는 사회공동체가 주는 보편적 명령이 있었어요. 지금 세대에게는 자본주의의 명령뿐입니다. 사회가 이 세대를 위한 보편적 프로그램을 유기하고 그 자리를 자본주의 체제로 메우고 있기 때문에 이 세대는 자기 정체성을 찾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고통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탐색, 자기번뇌의 깊이가 부족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지만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가치에 대응할 길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선을 뛰어넘어 근본적인 문제들을 짚어주시는군요.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그 ‘길’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없을까요?
▲김=개개인이 문제의식을 갖고는 있지만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할지 모르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저희 세대는 어렸을 때 집단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자랐기 때문에 연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으로 자립도 못하고 연대의 가능성도 끊어진 채 고립됐다고 느끼는 것이죠. 최진실씨가 자살했을 때 충격을 받은 이유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사람도 힘들었구나, 정말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박=물론 1980년대식의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연대는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사과씨 세대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과 연대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고 봅니다. 많은 젊은이가 관념적 고뇌에 빠져 있지만, 촛불집회 등을 보면 새로운 방식으로의 소통·연대가 일어나는 과도기 같습니다.
―두 분 세대의 청년들이 지녔던, 혹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나 화두는 어떤 것일까요?
▲김=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돈과 교환할 수 있을지, 지금 청년들은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처럼 당장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이 풍요로운 시대에 내가 먹고 살 것은 있나, 하는 상대적 빈곤감이 강한 거지요.
▲박=나도 동의합니다. 지금은 청년들이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닌 게 문제지요. 우리는 절대적으로 가난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 가난하진 않지만 비참하고 외로워 보여요.
▲김=과거에는 바닥에 있으니 올라갈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난하지 않아도 더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더 가난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죽도록 노력해도, 잘해야 현상유지이거나 아니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 같은데, 사실 청년은 말 그대로 인생에서 가장 푸른 시절을 살아가기에 그 어느 시기보다도 희망이 많은 특권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박=장 콕토는 ‘청춘은 안정가에 주식을 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번에 다 날리든, 망하든 베팅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청춘의 특권이라는 말인데, 그건 20세기까지만 맞는 말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안정가에 주식을 삽니다.
▲김=청년의 특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실수를 하고 일을 망쳐도 괜찮아요, 젊으니까.
▲박=청년이 부러운 것은 어떤 것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이를 먹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든, 가족이나 타인이 나를 사회 안에서 완성된 모양으로 정리해버립니다.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열과 자기 반역이 일어나고 있지만 세상은 완성돼 있다고 보는 거지요. 박범신의 소설을 보고 그게 박범신인 양 정의하지만 지금 김사과의 소설만으로 김사과에 대한 속단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미완성인 상태가 장점일 수 있습니다.
―어느 세대든 자신들이 젊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격려나 당부, 혹은 자신의 세대에 대한 희망의 다짐 같은 걸로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요?
▲박=어른과 청년은 편의적으로 나눈 것일 뿐 구분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청년은 자기부정을 통해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자, 언제나 최전방에 있는 서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아직 청년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부정을 두려워하고 세상이 주입한 정보에 의지해 양지만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곧바로 다른 여자를 찾는 게 나는 이해가 안 가요. (웃음). 물질과 성공만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갇혀 좌절하지만 말고, 딛고 일어나서 과감하게 부딪치기를 바랍니다.
▲김=그동안 늘 뭔가 ‘해야 한다’는 주입만 받아왔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는 용기가 이 시대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알려는 치열한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담=조용호 선임기자,
정리=김수미 기자 jhoy@segye.com
박범신은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전주교대와 원광대 국어국문과를 거쳐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67∼1973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 생활.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 당선. 2007년 국내 소설가 최초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촐라체’ 연재.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수상.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김사과는 1984년 서울 출생. 본명은 방실. 2005년 단편소설 ‘영이’로 제8회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 지난해 첫 장편소설 ‘미나’를 발표, 최근 젊은 여성 작가들에게서 유행하는 ‘칙릿’ 소설이 아닌 사회에 대한 비판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졸업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