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 재판’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주문하는 이메일을 판사들에게 보낸 배경 등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법원장이 법관에게 특정 사건과 관련해 40여일 새 3차례나 메일을 보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현 정권과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촛불시위 관련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주문한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달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신 대법관이 지난해 이메일을 보낼 당시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야간 집회를 금지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제청 신청한 상태였다. 신 대법관이 지난해 10월14일, 11월6일, 11월24일 40여일 새 3차례나 이메일을 보낸 건 법관에게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메일에 ‘대내외비’, ‘친전(親展·편지를 받은 사람이 직접 펴 보라는 뜻임)’이라고 쓴 사실은 신 대법관 스스로가 이메일 발송을 이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추정을 낳고 있다.
신 대법관이 당시 ‘촛불 재판’을 빨리 처리해야 할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그가 대법관 지명 1순위에 올라 있었다는 점을 거론한다. 과거 두 차례나 대법관 임명제청에 포함되지 못한 신 대법관이 인사 시기인 2월 전까지 촛불 재판을 끝내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도부 의중이었나=10월14일, 11월24일 이메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등 지도부의 의중임을 언급하는 듯한 표현이 나온다. 특히 10월14일 이메일은 대법원장에게 업무보고하면서 받은 지침을 전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이 없다”고 전제했지만, “(대법원장 의견이)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11월6일 이메일에서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다시 한 번 신속한 재판을 주문하고 있다. 촛불 재판을 놓고 지도부와 상의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법원 조직의 관료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관 평정제도에서 인사권자의 주관적 판단 요소가 추가되면서 심해졌다는 불만도 있다.
◆“통상적인 관리자 역할” 주장도=신 대법관의 이메일 발송은 법원 책임자로서 무리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촛불 집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자칫 법원의 들쭉날쭉한 판결로 정치권에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던 만큼 책임자가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판결 일관성을 위해 촛불 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집중 배당했다가 여러 부로 나눠준 상태라서 혼선도 예상됐다. 위헌 제청을 한 판사 외에 다른 판사들까지 판단을 유보할 경우 더 큰 파문이 일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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