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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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남겨진 자의 고통은 끝이 없다

유가족에 치명적 상처… 죄책감에 "따라죽고 싶다"

이달 ‘생명의 전화’ 상담 시작… 지원시스템 첫 걸음
지난해 멀쩡하게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아버지의 삶도 엉망진창이 됐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에 전화를 걸어 “많은 것을 기대한 아들이었다”며 “아들이 죽고 난 뒤 일상생활을 할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흐느꼈다. 그는 “나도 죽어야겠다”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남편을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내도 있다. 그는 남편이 올해 초 스스로 목을 맨 뒤에야 혼자 빚문제로 괴로워했음을 알았다. 그는 “‘고통을 나눠줬어야 하는데…’라는 자책감에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다”며 “어린 자식 때문에 그럴 수 없지만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자살은 유족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자살자 유족 대부분이 큰 충격을 받고 죄책감, 수치감, 분노, 혼란 등을 경험한다. 특히 이들은 자신도 따라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2차 자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한 해 1만2174명, 인구 10만명당 24.5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통계에선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21.5명으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기며 수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 자살에 따른 모방 자살과 동반자살 등이 신드롬처럼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자살예방 지침서는 “자살은 파급 효과를 갖고 자살한 사람과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며 “한 명이 자살할 경우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은 5∼1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자 유족을 돕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생명의전화가 유가족을 돕기 위한 전화상담을 최근 시작한 게 그나마 유일하다.

나선영 상담실장은 11일 “자살자 유가족을 돌보는 일은 연속 자살을 예방하는 중요한 자살 예방 전략 중 하나”라며 “아직까지 국내에 유가족을 돌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도 없고 사회 분위기도 수많은 유족의 고통을 개인 몫으로 돌리고 있다”고 상담전화 개설 이유를 설명했다.

상담전화는 이달 서울(02-763-9193)과 부산(051-807-9192)을 시작으로 다음 달 초 인천, 포항, 수원 지역에 추가로 개설될 예정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시간에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생명의전화는 또 유족들이 같은 경험을 나누며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모임도 만들 예정이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