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시 풍기읍 교촌리에 있는 경북항공고등학교를 찾은 것은 지난달 17일. 서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산자락마다 점점이 박힌 벚꽃이 마치 분홍 물감을 뿌린 듯했다. 이미 산정상까지 다다른 봄은 여름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창 안으로 스며드는 봄기운에 빠져 3시간여 만에 도착한 풍기. 읍내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인삼과 사과 가게들만이 다소 눈에 띌 뿐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이 한가롭다. 그런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공군 작전사령관 출신인 배창식(58·공사21기) 예비역 중장이 경북항공고의 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배 전 사령관이 풍기에 온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 그해 8월 말 전역하고 갓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다. 마을은 술렁였다. 공군 중장 출신이 시골 농촌마을 학교 교장으로 부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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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일 경북항공고등학교에서 열린 ‘항공실습장 준공 및 교육기자재 인수식’에 앞서 배창식 교장이 커팅된 J-28 엔진 앞에서 공군으로부터 기증받은 기자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배 전 사령관은 공군에서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38년간을 복무하면서 공사 생도대장과 교육사령관, 참모차장, 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공군참모총장을 빼고는 공군의 모든 엘리트 과정을 거친 셈이다.
보통 군고위급 장성들이 전역한 뒤 공기업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임원이 되는 것과 비교할 때 그의 행보는 파격이다.
주위에서 만류도 많았다고 한다.
“처음 고등학교 교장으로 간다고 하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아니, 공군 작전사령관 출신이 뭐하러 그런 촌동네에 가냐며 핀잔을 주는 이들도 더러 있었어.”
그가 이곳으로 온 데는 경북항공고 김병호 이사장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전역이 예정된 지난해 3월 김 이사장이 나를 찾아와 이 학교 교장으로 올 수 없냐며 제안하길래 일언지하에 거절했지. 대신 후배들을 추천하겠다고 했어. 그런데도 그해 9월까지 매달 끈질기게 오더라고. 마치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한 것처럼 말야. 그런 정성에 감동하고 말았지.”
“군생활을 하면서 16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았어. 전역해서는 무조건 가족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기업체 취업도 마다하고 정치권의 입당 권유도 뿌리쳤는데 덜렁 학교 교장이 된 거지. 지금도 마누라는 청주에 사는데 여전히 주말부부야. 허허….”
배 전 사령관의 풍기행에는 남다른 후학 양성에 대한 열정도 한몫했다.
그는 공사 생도대장과 공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가르쳤던 추억을 지금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하면서 그때가 제일 보람 있었던 시기였어. 아마 이번에도 그런 교육에 대한 미련이 날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
#작은 변화에서 희망은 자란다
경북항공고는 2007년 항공특성화 학교로 지정됐다. 하지만 경남 진주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 예하 공군항공과학고와 전북 고창의 강호항공고, 경남 고성의 경남항공고, 인천의 정석고 등 전국에 있는 항공고등학교에 비해 여러모로 열세다. 특히 강호항공고와 더불어 특성화 고교로 지정됐지만 연륜과 경험은 일천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호남에 있는 강호항공고처럼 영남에서 경북항공고가 자리를 잡는 데 주안점을 두고 배 전 사령관의 교장직 공모에 큰 관심을 뒀다.
지난 1월 교과부는 배 전 사령관을 위해 공모제 대상 학교가 아닌 이 학교를 공모제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 특성을 사립학교에서 자율화학교로 바꾸는 ‘무리수’까지 둬 논란을 빚었다. 그에게 거는 기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지난 3월1일자로 이 학교 교장으로 임용됐다.
정식 임용은 지난 3월이었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째 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나름 학교생활에 만족하는지를 묻자 “지난 3월부터 학생들이 몇 명씩 짝을 지어 교장실에 가끔씩 찾아본다. 교장에게 상담하러 오는 건데 작년 10월에 왔을 때는 없었던 일이야. 내가 학교에 온 뒤 달라진 것 중 하나다. 작은 변화지만 보람을 느껴”라며 흐뭇해했다.
“또 처음 부임했을 때는 대부분 학생들이 ‘비틀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와서는 머리가 많이 짧아졌어. 선생님들도 전에는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정확히 오후 5시면 퇴근했는데 이제는 학생들과 밤늦게까지 남아서 함께 공부하는 일이 많아졌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뒤 학생 및 선생님들과 대화를 통해 무엇보다 타성에 젖은 습관을 버리게끔 하는 데 공을 들인 결과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학생들과 직접 만나 인생얘기도 나누고 있다.
“3학년을 대상으로 특성화 교육을 할 때면 ‘웃음은 대박’, ‘불평불만은 쪽박’,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가르쳐. 그러면서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도시에 있는 또래들과 비교해가며 아이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하지만 무엇보다 법과 학칙, 선생님과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에 힘을 쏟지”라고 말했다. 배 교장의 이 같은 교육 방침에 최근 들어 경북지역 학교들의 견학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남기고 갈 것은
기자가 찾은 지난달 17일은 마침 경북항공고가 공군으로부터 A-37 공격기(블랙이글) 1대와 F-5 A/B 전투기 2대 등을 기증받아 ‘항공실습장(400평 규모) 준공식 및 교육기자재 인수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다.
변변한 실습장 하나 없었던 경북항공고로선 그 면모를 새롭게 탈바꿈한 셈이다.
배 교장은 “실습장을 마련한 만큼 이제는 교과부나 도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열악한 교육시설 개선에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특성화 고교인 탓에 전국에서 학생모집이 이뤄지는 만큼 우수자원 확보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모자라는 기숙사 증설은 배 교장의 최대 역점사업이다.
현재 경북항공고는 한 방에 4명씩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종전 80명 가용인원을 160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이것도 내년에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졸업하는 3학년은 기숙사 이용이 10명에 불과하지만 새로 입학하는 1학년은 그 수가 몇 배로 늘 것으로 보여 부족분을 어떻게 메울지 걱정이야. 멀리서 오는 학생들이 불편함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라며 배 교장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현재 항공특성화 고교 중 고창 강호고는 공군 전투기 정비를 맡고, 경북항공고는 육군 헬기 정비분야 인력을 양성하는 것으로 돼 있는 구조도 개선할 생각이다.
“12월 국방부에서 분석·평가할 때 결정하겠지만 현재 고정익 전투기는 강호고, 회전익 헬기는 경북항공고로 분리된 정비인력 양성분야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건의할 것”이라며 포부를 내비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교장실을 나서며 만난 학생을 보고는 “야, 너 머리 잘랐구나”라며 머릴 쓰다듬고는 환하게 웃는다. 이어 준공식을 준비하는 실습장에서 깁스한 학생에겐 “팔은 왜 그래, 어떡하다 다쳤어”라며 등을 다독인다. 잠시 후 교사 뒤편에 있는 화장실을 둘러본 뒤 화장실 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보고는 “담배 피운 것 아니지?”라며 캐묻는 그의 폼은 이제 영락없는 교장선생님이다.
풍기=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프로필
배창식 교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전투기 조종사로 38년간 군생활을 했으며, 공군사관학교 생도대장과 국방대학교 부총장, 공군 교육사령관, 참모차장, 작전사령관 등을 거쳐 2007년 8월 전역했다.
배창식 교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전투기 조종사로 38년간 군생활을 했으며, 공군사관학교 생도대장과 국방대학교 부총장, 공군 교육사령관, 참모차장, 작전사령관 등을 거쳐 2007년 8월 전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