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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싶다는 디자이너 이진윤씨는 “옷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 말고 내 옷을 통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허정호 기자 |
시상식을 마치고 최근 서울에 돌아와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이씨를 만났다. 그는 “최종 후보자 중에서 내가 제일 안 유명한데 수상자로 뽑혔다”며 웃음 지었다.
망고 패션어워즈는 세계적인 여성 의류브랜드 망고와 영국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 등에 있는 유명 디자인스쿨 5곳의 주도로 열린다. 대상 상금은 30만유로(약 5억3000만원). 섬유·패션업계 관련 대회 중 최대 상금으로, 전 세계 신진 디자이너들이 탐내는 상이다. 또 대상 수상자의 작품은 1200개가 넘는 전 세계 망고 매장을 통해 전시, 판매된다.
그의 수상이 특히 값진 것은 ‘해외파’ 아니면 명함 내밀기 어려운 패션계에서 그는 국내에서 공부하고 서울컬렉션을 발판으로 도약한 ‘토종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관련 전문대에서 시작해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을 거쳐 현재 홍익대 의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한국 디자이너라는 것을 강조한다. 발음상 불편을 없애기 위해 해외에서는 편의상 영어 이름을 병행해 쓰곤 하지만 작품을 낼 때만은 어디서든 ‘이진윤’이라는 이름을 내놓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서울컬렉션에서 데뷔했으니 감사한 마음뿐이죠. 하지만 말로는 ‘우리 것이 좋다’고 하면서 선진국에서 태어나 공부한 사람을 맹신할 때마다 참 답답합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것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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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선비의 옷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진윤씨의 작품이 바르셀로나의 명물 카사밀라 앞에 전시돼 있다. |
“우리 것을 어떻게 살리고 버릴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저는 우리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냉정하게 말해 해외의 것에 비해 이질적인 것일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복을 화려하게 만들거나 한글을 천에 프린트해서 해외에서 쇼를 하는 게 패션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에 맞게 재창조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방법이죠. 스코틀랜드의 전통 ‘타탄체크’를 옷 속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한국적 미를 살리는 재창조 작업을 위해 이씨는 한복에 쓰이는 오간자 소재와 아나콘다, 타조 등 고가의 가죽을 함께 사용했다. 몇 년 전 한 패션쇼에서 우연히 본 소재에 필이 꽂혀 서울 동대문 일대를 수소문 한 끝에 모시에 실크와 한지를 섞어 만든 독특한 소재의 오간자를 찾았다. 요즘엔 경북 상주의 할머니들이 소규모 생산으로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 천을 이용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진윤 표’ 옷이 비로소 탄생됐다.
경북 영천시에서 태어난 그는 또래 아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할 때 혼자 패티김을 좋아했던 별난 소년이었다. 늘 곤충채집과 그리기에 혈안이 돼 있었고, 무슨 분야든 한 번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양복 양장계의 거장부터 명품 브랜드의 장인까지 다양한 스승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대학에서는 지식을 감수성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대한민국 웨딩드레스 콘테스트 대상(2000년), 두타벤처디자인경진대회 대상(2000년), 서울벤처디자인콘테스트 대상(2002년), 홍콩 패션위크와 파리 ‘후즈 넥스트’ 참가(2002∼03년) 등 실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쇼핑몰에 간신히 매장을 얻어 인테리어까지 마쳤는데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통보를 받는가 하면, 국내 디자이너에게 유독 까다롭게 구는 백화점의 횡포도 겪었다.
그는 “한국의 신인 디자이너들에게는 좋은 매장 입점 기회 자체가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재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며 “늘 속으로 ‘타면자건’(唾面自乾·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뜻)을 외쳤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는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 후배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패션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창작력을 불태워서 세계의 디자이너와 경쟁할 수 있는 자신감을 20대에 꼭 키워야 한다”며 이번 상금의 일부도 패션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한 기금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제 막 세계 무대에 올라선 그는 앞으로 가방 등 액세서리 공부를 더 하면서 자신의 브랜드 ‘이진윤’을 해외에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나는 이런 옷을 만들 수 있다’고 과시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입은 사람을 잘 뒷받침하고 과대포장하지 않는 옷이 내 옷이면 좋겠어요. 진정한 이진윤의 옷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뒤흔들고 싶습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