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에 대한 애정도 이제 다 식었고 더 하다가는 가족간 인연마저 끊기겠다 싶어 이 길을 택했습니다."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 김현동(41.가명) 씨는 2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쌍용차 연수원에서 희망퇴직서를 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해고 대상자 976명에 포함돼 30여일간 공장점거 파업에 참여했던 김씨는 13년간 정든 직장을 떠나는 것으로 길고 힘들었던 싸움을 스스로 끝냈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정리해고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도, 임금 체불로 인한 생계 걱정도 아닌 노노 갈등에 휩싸여 서로 적대하게 된 형제.가족과의 관계였다고 했다.
김씨 가족은 사내에서 유명한 '쌍용차 가족'이었다.
김씨의 장인 조모(67)씨는 쌍용차에서 30여년을 근무하다 정년 퇴임했고 김씨의 친형(51.83년 입사)과 큰 동서(44.86년 입사)도 쌍용차에서 20년 이상 근무해 왔다.
딸만 둘을 가진 조씨는 "내가 쌍용에서 아들 둘을 얻었다"며 자랑스러워 했고 10여년 전엔 '쌍용차 대표 가족'으로 사보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서와 형, 김씨 등 세 가족은 함께 어울려 여행도 다니고 회사 내에서도 돈독한 우애를 과시했다.
지난 1월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들의 우애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힘든 처지를 이해하기에 더욱 힘이 되고 위안이 됐다.
그러던 이들의 관계는 지난달 초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이 통보되면서 급격히 변했다.
김씨는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되고 형과 동서는 잔류 인원으로 분류되면서 파업에 동참한 김씨와 빠른 공장 정상화를 바라는 형.동서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잦아졌다.
"정리해고 대상자 통보 이후 의견이 부딪치게 됐어요. 서로 극단적인 얘기만 들으니까 의견 차이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노노갈등이 빚어지면서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됐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사측 임직원들이 공장 진입을 하며 형제와 동서는 서로 쇠파이프와 지게차, 새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마주 섰다.
당시 도장공장 옥상에 있었던 김씨는 "차마 형의 얼굴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쌍용차가족대책위로 활동한 김씨의 부인 조모(38)씨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기막힌 상황을 호소하며 "부모님이 쌍용차 사위 얻은 것을 후회한다"고 밝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결국 100여명이 부상하는 유혈충돌이 빚어진 뒤 며칠을 고심하던 김씨는 1일 밤 파업 동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별을 고하고 공장문을 나섰다.
김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합원들은 "할 만큼 했다"며 김씨의 등을 두드렸다고 했다.
형과 동서가 야속하지는 않았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서로 대화를 못하고 극단적인 얘기만 들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게 우리들 잘못이 아니라 회사 잘못 아니냐. 다 털어버리고 예전처럼 잘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누가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고 싶겠느냐. 평범한 노동자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 원인은 분명 회사 내부에 있다"고 했다.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