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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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추진 '기대반 우려반'

北 核실험 와중에 공론화… “美 경계심만 높일라”
정부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면서 이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평화적 핵주권,

즉 ‘우라늄 채광→농축→핵연료 제조→사용→사용후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핵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을 얻고 있지만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를 공론화한 것이 전략적으로 적절했느냐는 부분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정리 안 된 정부=
우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의 목표와 전략,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기존 협정과의 상충관계 등에 대해 정부 내부적으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협상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우리 스스로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한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의 연관관계도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핵심 사안으로 꼽히는 ‘농축’과 ‘재처리’에 있어서는 정부 당국자들조차 얘기가 엇갈린다. 먼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원자력) 원료의 공급이나 쓰고 남은 원료의 처리문제에 있어 상업적 이익은 최대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체적인 협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료의 공급’은 농축을, ‘쓰고 남은 원료의 처리’는 재처리를 뜻한다. 이 때문에 유 장관의 발언은 농축과 재처리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에 더해 협상과 관련된 당국자는 “현재 협정상으로는 우라늄 235를 추출해서 2∼5%로 저농축하는 프로세스를 못 하게 돼 있는데, 이를 할 수 있다면 연료도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되니 원전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우라늄 저농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로밖에는 볼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다른 책임 있는 고위 당국자는 12일 “농축과 재처리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정책적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기존의 ‘약속’을 뒤집어야 할 만한 시급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농축, 재처리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경계심을 잔뜩 높인 상태에서 어떻게 협상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리수의 배경은 ‘눈치보기’=정부가 이처럼 입장이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민감한 문제를 섣불리 언급하는 배경에는 정치권과 청와대에 대한 ‘눈치보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교 소식통은 “지난 5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응적 차원에서 우리도 핵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정치권의 무분별한 주장이 쏟아졌고, 여기에 떠밀려 때마침 시기가 도래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핵주권론에 정부가 장단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최근 언론기고를 통해 “합법적인 핵 활동을 확보하는 일은 시급하지만 지금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한미 간 신뢰가 충분히 회복되었는지, 스스로 역량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외교장관을 지냈던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한미 원자력협정은 개정이 필요하지만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현 시점에서 공개적 발언을 한 것은 핵개발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부적절하다”면서 “2012년 개정 협상 완료를 목표로 미국 측과 조용하게 협의를 추진해 온 만큼 공론화하는 것은 우리의 평화적 핵주권을 더욱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기자 m21s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