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으로 살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죠.”
이찬수(48·사진) 전 강남대 교수는 요즘 자신의 삶에 대해 “이리저리 바쁘고 역동적이 됐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안정적인 수입과 연구가 보장된 교수직을 잃은 뒤 그에게 붙은 타이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내에서 초교파를 지향하는 퇴촌 산골 교회의 목사. 이 대학 저 대학 찾아다니며 강의하는 교수 출신 시간강사,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천아카데미) 연구위원, 종교문화연구원 원장 등등…. 그래서 그는 항상 바쁘고 언제나 활동적이다.
대학 교수였던 그가 요즘처럼 바쁘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은 편협한 종교관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1999년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로 부임해 ‘기독교와 현대사회’ 등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2003년 큰 일이 벌어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도한 단군상 철폐운동과 이에 맞서는 사람들 간의 갈등과 해법을 다룬 한 TV 프로그램에서였다. ‘종교 간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기독교인이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남양주 수종사 불상 앞에서 삼배를 했다. 그 모습이 TV를 통해 생생히 전해졌고, 한기총은 개신교 재단인 강남대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학교에 충분히 소명도 했다. 학교도 처음에는 큰 문제를 삼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강의가 일거수일투족 모니터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는 2006년 1월 강남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가 받은 것은 ‘창학이념에 위배된다’는 내용증명뿐이었다.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는 창학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연구실에 두고온 평생의 재산이자 영혼이나 다름없는 책에도 ‘접근금지’를 당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편협한 종교관 때문에 발생한 인권 탄압 사례라고 여긴 그는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했다. 교육부는 강남대의 결정이 잘못됐다며 이 전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또 2008년 10월 23일에는 대법원에서 학교 측의 부당행위가 패소했다. 그래서 그는 그때 응당 학교에 복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 강남대 교수로 남아있다.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재임용 탈락 후 경제적 어려움이 커진 그는 빚을 내 지어서 살고 있던 퇴촌의 집 겸 교회를 팔고, 전세로 옮겼다. 교회는 컨테이너 안에 만들었다. 팻말도 없는 이 컨테이너 교회 이름은 ‘길벗예수교회’. 전국 여러 대학으로 다니는 ‘보따리장수’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는 “학교 복직 문제는 종교인권 침해라는 점에서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복직을 하려면 민사소송도 해야 하고,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오히려 재임용 탈락이 가져다준 새로운 삶을 ‘축복’이라 여기며 산다. 그는 “종교 간 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사명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종교의 핵심은 자신이 속해 있는 외형적인 조직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내면적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있다”며 “종교 간 대화, 대화도 단순한 대화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그는 오래전부터 종교 간 대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불교를 들여다 보니 내가 가진 기독교가 더 잘 보인다”고 했다. 석사과정에서 신학도 했고,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면서 박사과정도 마쳤다. 강남대에서는 기독교 강의지만, ‘배타적이지 않은 기독교’를 강의했다.
그는 역설한다. “각기 다른 종교가 서로 이해하면 구원의 길은 더욱더 넓어질 것”이라고.
광주(경기)=글·사진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