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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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무형문화재…한민족의 혼이 사라진다] <4> 부실한 지정·관리 체계

입력 : 2010-01-28 09:05:21
수정 : 2010-01-28 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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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걸어온 외길… 허술한 심사에 또 한번 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도는 1964년 처음 시행돼 4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보유자(인간문화재) 인정과 관련해선 잡음이 끊이질 않고 금전 비리도 일어난다. 전승 실태 점검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 지정제도 무용론을 제기하는 등 제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그치지 않는 투명성 논란=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은 진주검무, 소목장 등 4개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7명을 인정 예고했다. 그러자 심사에서 떨어진 후보자 A씨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문화재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A씨는 현장조사 위원의 지역편중과 자질을 문제 삼았다. A씨는 심사위원들이 지방문화재 보유자와의 친분관계를 묻는 등 심사와 무관한 질문을 했으며, 실사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나 원칙이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비 인간문화재의 경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소목장 인간문화재였던 고 천상원씨의 제자로 1982년 전수조교가 된 김금철(55)씨 역시 이번 심사에서 탈락했다. 김씨는 떨어진 이유라도 알고 싶어 관련 기관을 찾아갔지만 담당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탈락한 까닭을 알 수 없다”며 “혹시 ‘백’이 없어 떨어졌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문화재 인정 심사 결과를 놓고 이의가 제기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8년엔 국회의원 M씨의 여동생이 인간문화재로 인정된 것과 관련해 실세 개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1996년에는 인간문화재 심사과정에서 문화재 전문위원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무형문화재 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문화재 선정을 위한 현장심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도 가부 등 기본적인 내용만 공개된다. 무엇보다도 세부 심사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공정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문화재위원회 회의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운영지침을 개정했지만, 분과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안건을 비공개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전공이 다른 문화재위원이 심사를 하고 단순히 서류를 잘 만들거나 발이 넓은 사람이 인간문화재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며 무형문화재 지정제도에 불신감을 드러냈다.

◆관리 체계도 허술=이수자 선정과정에서도 잡음이 인다.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24조에 따르면 이수자는 ‘기능이나 예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자’여야 한다. ‘상당한 수준’이 주관적인 잣대인 데다가 이수자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도 보유자가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객관성을 갖기 힘든 상황이다. 3년 전수기간을 채우지 않고 이수자가 되거나, 이수자 심사 결과 집계·발표를 보유자 단독으로 처리하는 등의 사례가 빈발하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이는 인기 종목의 경우이고, 비인기 종목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다. 칠 부문 인간문화재인 정수화(56)씨는 “일 배우러 사람 찾아온 지가 5년이 넘었다”며 “정부가 현대영화 진흥 같은 데만 손을 댄다”고 비판했다.

자개 공예품인 나전 분야 인간문화재 이형만(64)씨는 이전 보유자가 지정해 놓은 전수조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새 전수조교 임명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는 전수작업을 실질적으로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인간문화재는 이유 없이 2년 이상 공개 시연을 하지 않거나 신체장애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인정을 해지할 수 있지만, 전수조교는 해지 조항이 없어 한번 조교가 되면 실질적인 활동 없이도 신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 김삼기 무형문화재과 과장은 “지난해 무형문화재 전승자 실태조사에 착수한 상태”라며 “전수조교 해제 조항을 만들고 1년에 1회 전승활동 내용도 보고하도록 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전승 활동을 위해 전국 112곳에 건립된 전수교육관도 관리가 부실하다. 인기가 높은 무형문화재가 있는 전수교육관의 경우 수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각종 활동을 펼치지만, 일부는 예산이 적어 전승자들이 사비를 털어 근근이 운영하기도 한다. 문화재청이 건립비의 50%를 지원하지만 운영은 지자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정확한 운영 실태조차 파악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말에야 뒤늦게 전수교육관 운영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 팀장 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현황 (2009.11.30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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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지정 1 7 - - 14 11 9 5 12 6 10 3 10 1 89
22 10 1 1 14 17 12 7 16 12 23 7 27 6 175
자료: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