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한국→일본…탈북여성의 고단한 삶
지난 14일 경기도 안성에 사는 김혜림(가명·30·여)씨. 그는 1시간 남짓 진행된 통화 말미에 “이제 소망이 뭐냐”고 묻자 한숨만 내쉰 채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는 2005년 북한을 탈출, 이듬해 4월 꿈에 그리던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그해 9월 사회에 나왔다.
◇탈북자 정착지원시설 하나원 |
김씨는 지난달 말 일본에서 유사성매매를 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적발됐다.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김씨는 하나원 퇴소 이후 ‘환경이 바뀐 탓인지’ 온몸에 열꽃이 피고 복통에 시달렸다. 정확한 병명도 몰라 1년여를 앓았다. 160㎝ 키에 54㎏이었던 몸무게는 15㎏이 넘게 빠졌다. 피부과 등은 건강보험 대상도 아니어서 300만원 상당의 정착금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경찰 도움으로 일자리도 알아봤지만, ‘건드리면 넘어질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업주들은 고개를 저었다. 월 40만원이 안 되는 최저생계비를 받아가며 한해, 두해를 보냈다.
2009년 1월, 김씨는 같은 아파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 어떡하느냐”며 “딸이 일본에서 가게를 하는데 깔끔하니 한번 일해보라”고 권했다. 김씨는 ‘어떻게든 벌어먹자’는 생각에 일본에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김씨와 비슷한 형편의 탈북여성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일본 도쿄 북부 중심가 우에노(上野)에 있는 ‘유메노데’(夢の手·꿈의 손)란 마사지업소였다. 김씨는 3주가량 마사지 기술을 배운 뒤 곧바로 영업에 투입됐다. ‘마마’(업주)로 불린 탁모(49·여)씨는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란 말을 지겹도록 강조했다. 대가는 시간당 6000엔(약 8만원). 하루 4∼5명의 손님을 받아 업주와 5대 5로 나눴다. 받는 돈으로 숙식까지 해결하다 보니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됐다.
‘남한 사람들도 본인 뜻대로 다 못하고 산다’며 마음을 다잡기를 수십번.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도 ‘마무리’를 해달라며 떼를 쓰거나 성관계를 강요하는 손님이라도 만나는 날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월수입 1500만원은 너끈하다’는 브로커 말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벌이는 너무 형편 없었다. 김씨는 그곳에서 1년 가까이 일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죽더라도 한국에서 죽자’고 생각해 돌아왔다”고 했다.
◆‘알바’ 전전하다 결국 범죄 유혹에
정부나 일부 성공한 탈북자들은 국내 정착에 ‘자립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도나 언어가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일궈야 하는 그들에게 ‘해보겠다’는 의지만으로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한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자의 75%는 한창 일할 나이인 20∼40대. 이들의 탈북 전 직업은 ‘무직·부양’과 ‘노동자’가 각각 49%(9380명), 39%(7369명)로 대부분이다. 최종 학력은 70%(1만3335명)가 남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중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 졸업’이라고 밝혔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악화된 경제사정으로 북한 의무교육이 파행으로 운영된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특히 탈북 여성이 북한에서 해 본 직업 경험과 경력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이 당장 생계유지를 위해 일용직을 전전하는 가운데 탈북 여성들이 유흥업 등에 몸을 담그게 되는 이유다.
‘신아시아연구소’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 용역보고서를 통해 “여성 탈북자의 입국이 급증하고 이들 대부분이 장기 해외체류로 심각한 경력 단절과 교육기회 박탈의 경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 여성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보니 유흥업소를 전전하거나 보험사기 등 범죄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스스로 일해서 자립하기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남는 게 더 이익이라는 풍조도 널리 퍼져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 양기동 경사는 “봉제공장에서 하루 10∼12시간씩 실밥을 뽑아도 겨우 월 100만∼120만원을 받는다”며 “아이 두 명을 둔 엄마라면 최저생계비를 80만원 정도 받고 노래방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로 50만∼60만원 버는 것이 편한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특히 탈북자 상당수는 오랜 도피 생활 등에 심신이 지쳐 건강이 좋지 못하다. 진단서를 어렵지 않게 뗄 수 있는 데다가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일부 병원에 돈을 쥐어주면 실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처럼 진단서를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원 관계자는 “제도상의 맹점이다. 탈북자가 10년도 안 돼 안정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하다”며 “최근 여성 탈북자가 유흥업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