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당시 인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시험 17회 동기생인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을 어디로 보낼지, 그리고 차기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누구를 임명할지 2가지였다.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에는 “이종백 검사장을 서울고검장이나 법무연수원장에 임명하려는 청와대와 ‘지방 고검장으로 발령해야 한다’는 천정배 법무장관 간 대립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선 천 장관이 사시 18회 동기생인 정동기 인천지검장을, 청와대가 부산·경남(PK) 인맥으로 분류되는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을 각각 미는 통에 경합이 아주 치열하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 검사장은 부산고검장으로 가고 새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임채진 국장이 오는 걸로 ‘교통정리’가 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천정배 장관이 ‘1승1패’를 거둔 모양새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책임을 물어 이 검사장을 지방으로 ‘내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정수사의 최일선인 서울중앙검사장 자리에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정동기 검사장을 ‘앉히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2010년 말 이명박 정권을 향해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등 독설을 퍼부었던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유독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선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끈다. 11일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천 의원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외로 “정 후보자는 공직생활은 청렴하게 해온 분”이라고 말했다. 법무장관 시절부터 정 후보자에게 가졌던 ‘믿음’을 고스란히 다시 드러낸 셈이다. 천 의원은 “정 후보자와 나는 사법연수원 8기 동기생으로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요즘 이명박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독설 정치인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천 의원한테서 전·현직 검찰 간부들에 대한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2009년 청와대가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을 새 검찰총장에 내정했을 때 야권 인사 중 거의 유일하게 김 총장을 ‘훌륭한 검사’라고 칭찬했다. 김 총장은 천 의원이 법무장관이던 시절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2009년 초 ‘용산참사’가 터져 검찰이 수사에 나섰을 때 야당 의원 대부분이 ‘편파 수사’라고 비난했지만 천 의원은 말을 아꼈다. 기자들 질문이 쇄도하자 “지금 수사팀이 다 내가 법무장관 시절 데리고 일한 사람들”이라며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는 당시 수사를 책임진 임채진 검찰총장과 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임 총장, 정 차장도 천 의원이 법무장관이던 시절 각각 검찰국장, 검찰1과장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법무장관 시절부터 신뢰… '사법연수원 동기생' 인연도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