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이 학생 평가요소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방학만 되면 봉사활동 시간 채우기에 급급한 청소년이 많다. 점수를 따기 위한 의무감에 봉사활동을 하면 대부분 일회성에 그치게 되고 봉사를 통한 진정한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반면, 꾸준한 봉사를 통해 남을 돕는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스스로 성취감을 찾는 이들도 많다. 고궁, 사료관 등에서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거나 박물관에서 어린이 도슨트(Docent·안내인)로 활약하며 나눔, 그 이상의 의미를 실천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보자.
![]() |
|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사료관에서 김미리(11)양이 관람객에게 전시품을 소개하고 있다. |
“봉사라는 생각보다는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서울 돈암초교 5학년 김미리(11)양은 겨울방학을 맞아 종로구 정독도서관 내에 있는 서울교육사료관에서 어린이 문화유산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8일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내·외국인에게 전시실을 안내하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4학년 때부터 청소년 자원봉사단(ICI)에 가입해 경복궁, 창경궁 등 고궁과 서대문 형무소 등에서 해설사로 활동한 김양은 방학 중에는 한 달에 두세 번, 학기 중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활동에 참여한다.
김양은 “엄마 권유로 시작했지만 이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을 정도로 해설사 활동에 재미를 붙였다”며 “특히 이번엔 외국인들이 관심 있어 하는 우리 교육의 역사를 설명하다 보니 스스로도 많이 배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엄마 손을 잡고 고궁과 박물관을 수시로 다닌 덕에 공간에 대한 친숙함은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국인에게 초등학생으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역사 관련 용어를 영어로 풀어내는 일은 특히 그랬다. 일부 외국인에겐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어린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다.
김양은 역사 만화책을 보며 관련 정보를 수집해 원고를 수정·보완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다 보니 이젠 꽤 두툼한 자신만의 안내 노트가 생겼다. 김양은 “처음 해설사 교육을 받을 때 시나리오를 주는데 거기에 내용을 추가해 ‘나만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며 “A4용지 절반 크기로 중간에 내용을 추가해 넣을 수 있는 파일 형태의 시나리오 수첩을 만들었더니 같은 활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표본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에 이제 김양은 어엿한 ‘어린이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설명을 하다 빠진 부분이 있으면 외국인에게 이메일로 관련 내용을 보내주기도 하고, 일본인에게는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리 역사를 설명하는 법도 익혔다. 설명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도 그에게 편지와 이메일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
김양은 중·고교에 진학해도 활동을 이어가며 외교관의 꿈을 이뤄갈 생각이다. 특히 서대문 형무소에서 해설사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에 눈물을 쏟은 뒤로 유엔 사무총장을 꿈꾸게 됐다는 김양은 “유엔 사무총장이 돼서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더 정확히 알리고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며 “외국에 빼앗긴 문화유산도 모조리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
| ◇‘어린이 도슨트’로 활동중인 김지유(12)양이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한반도의 지진 분포도를 설명하고 있다. |
서울 재동초교 6학년 김지유(12)양은 3년 동안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서 ‘어린이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직접 또래에게 박물관에서 전시실을 안내하는 ‘어린이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된 1기 때부터 참여한 뒤로 어느덧 3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1, 2기 때는 암석 분야 설명을 맡았으나 이번 3기 때부터 동굴과 지질 분야 설명을 맡고 있다. 김양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오빠 덕에 과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게 됐다”며 “알고 있는 지식을 혼자만 갖고 있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과 나눌 수 있어 훨씬 뿌듯하다”고 말했다.
낯선 용어로 가득한 지질 분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 과학책은 물론 인터넷까지 뒤져가며 공부를 해야 하지만 김양은 그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김양은 “지질 분야는 ‘원소광물’ 같은 어려운 용어가 많아서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설명을 듣고 조금씩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가끔 잘못된 정보를 안내했을 때 관람객이 잘못을 고쳐주기도 하는데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인 만큼 친구들과 맘껏 놀고 싶고 중학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김양은 도슨트 활동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2월 모집하는 4기 도슨트에도 지원할 계획이다. 김양은 “도슨트 활동으로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친구들을 박물관으로 초대한다”며 “한 달에 2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되는 거라 중학교에 가더라도 계속해서 활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양은 “봉사라고 생각하면 아마 계속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런 활동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게 많아진 것 같아 오히려 기쁘다”고 말했다.
![]() |
| ◇서울 노원구 공릉동 조선왕릉전시관에서 이병현(16)군이 방문객에게 조선시대 왕릉의 분포 지역과 무덤 양식을 안내하고 있다. |
서울 노원구 공릉동 조선왕릉전시관에서 청소년 해설사로 활동하는 봉은중학교 3학년 이병현(16)군은 “내·외국인에게 우리 문화유산의 좋은 점을 알리는 건 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친구 소개로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의 청소년 해설사 프로그램을 알게 된 이군은 2009년 10월∼지난해 7월까지 진흥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최종 시험을 거쳐 해설사로 선발됐다. 이군은 “흥미가 없으면 짧지 않은 교육을 받고 한 달에 몇 차례씩 해설 봉사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있어서 교육도 즐겁게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군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 영향이 컸다. ‘승정원 일기’ 번역 업무에도 참여할 정도로 역사에 해박한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이군에게 위인전과 역사책을 읽게 했다.
해설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본격적인 계기를 심어준 건 2008년 미국 뉴욕에서 1년간 거주하면서부터다.
이군은 “부모님과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여행을 다녔는데 특히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같은 박물관을 많이 다녔다”며 “박물관마다 한국관이 있는데 한국 문화재는 아시아 전시실의 중국과 일본의 유물들 사이에 볼품없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규모 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데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건 무리란 생각에 직접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한 뒤 유네스코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왕릉전시관은 도심에서 멀어서 아직까진 많은 외국인이 찾지는 않지만 2년 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으니 앞으로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며 “학업에 지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한 달에 2∼3회 계속 활동을 하면서 꿈을 향해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