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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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판치는 방송 … 언어 파괴 ‘주범’

시청률 경쟁 매달려 청소년에 악영향
소통 단절 등 부작용… 심의 강화해야
“확 턱주가리를”, “너 진짜 죽는다”, “방송이고 뭐고! 지금 눈이 뒤집히는데…확! 씨!”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에서 출연자들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KBS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 “낫살이나 처먹어 갖고 그걸 어떻게 해” 등의 비속어가 그대로 방송됐다.

대중매체는 우리말 파괴의 최대 주범으로 꼽힌다. 특히 시청률 경쟁에 몰두한 방송 드라마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선정성과 폭력성은 날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9일 국립국어원·SBS가 공동으로 방송3사 프로그램 4개월 분량을 분석한 결과 예능 프로그램은 1분에 1번 이상 비속어, 욕설, 차별적 표현, 인격 모독 표현 등이 쓰인 것으로 집계됐다.

방송 언어는 청소년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우려된다. 방송 프로그램의 유행어나 말투 등이 순식간에 전파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수많은 시정 권고에도 일부 프로그램에서 막말과 비속어, 반말 등이 난무해 언어 파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소년 언어사용’ 실태 조사 결과 청소년들은 대화에서 평균 20어절에 한 번씩 비속어·유행어·은어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많이 사용된 비속어는 ‘존나’와 ‘씨발’이었는데, 뜻을 알고 쓰기보다 ‘매우’란 뜻을 나타내거나 습관처럼 말 중간에 삽입하는 양상을 보였다.

보고서는 “언어 파괴 현상이 세대 간 소통 단절을 초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교육 강화뿐 아니라 방송언어 심의기준을 강화하는 등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시인 문정희씨(전 고려대 교수)는 “언어는 그 시대와 그 사회에 살아 있는 가장 정직한 생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속어, 외래어, 신종조합어, 걸러지지 않은 어투의 말이 쏟아지는 방송 프로그램 등은 우리 사회의 천박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면서 “이러다 보면 정신적으로 매우 천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현일·김예진·조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