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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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민 울리는 사금융의 ‘덫’… 갈수록 폐해 심각

금감원, 작년 수사기관 통보건수 전년比 5.7배 폭증
#1. 경기 남양주에 사는 박모(50·여)씨는 작년 10월 저녁 남편을 만나러 왔다는 한 낯선 남자에게 문을 열어줬다가 극심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구둣발로 집안에 들어서더니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집기를 발로 차고 박씨의 목을 치는 등 행패를 부렸다. 그러다가 건넨 메모지에는 남편이 갚아야 할 금액과 이자가 적혀 있었다. 폭행과 제3자 채무고지 등을 통한 전형적인 불법 채권추심 행위였다.

#2. 서울에 사는 송모(38·여)씨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저신용자이다. 작년 6월 이사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5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한 캐피탈 회사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고 대출상담을 받았다. 저신용자는 으레 공탁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500만원을 선입금했지만 대출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업체에 연락해 보니 “해당 번호는 사용중지됐다”는 말만 반복됐다. 말로만 듣던 선수금 지급 대출 사기였다.

◆수사 통보 대부업체 작년 5.7배 폭증

사금융의 덫은 단순히 급전을 구할 수 있다는 매력과 맞바꾸기에 너무나 질기고 끔찍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금리에 상환시한을 넘기면 찾아오는 불법추심, 부당한 중개수수료 등의 피해가 어김없이 뒤따랐다.

은행이나 제2금융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악덕 사금융의 폐해는 금융감독원이 2001년 4월 사금융피해상담센터를 개설해 10년간 상담한 기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감원이 2010년 접수한 사금융 피해상담은 총 1만3528건으로, 2009년 6114건에 비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고금리 수취 등 불법 혐의로 수사기관에 통보한 건수는 작년에 총 1520건으로, 전년(268건)에 비해 6배 가까이 늘었다.
◆젊은층, 급전 유혹 취약… 등록 대부업체도 위험


2010년 한 해 동안 접수된 피해상담 1만3528건 중 나이를 밝힌 4323명을 연령별로 분류해 보니 30대가 33.6%(1453명)를 차지하는 등 젊은층이 더 많았다. 급전의 유혹에 더 쉽게 이끌리고 어떻게든 갚을 수 있다는 자만 때문으로 분석된다. 40대가 26.2%(1132명)로 뒤를 이었고 20대와 50대 비율도 각각 17.1%(741명), 17.3%(747명)였다.

이들이 사금융을 이용하게 된 최초 경로는 생활정보지와 무차별적인 전화광고를 통해서였다. 특히 생활정보지를 접하고 대부업체 문을 두드린 이들은 전체의 30.7%를 차지했다. 대부업체의 등록·미등록 여부는 안전한 대출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피해 상담자의 10.2%는 오히려 영업요건을 엄격히 제한받는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했고, 이들은 대부분 폭행 등 불법적인 채권추심(19.2%)의 피해를 봐야 했다. 미등록 대부업체로부터는 높은 중개수수료(8.7%)와 고금리(7.0%) 피해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자 대다수가 워낙 급하게 돈을 빌리다 보니 피해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구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에 통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결국 수사 필요성이 있는 사안들을 따로 추려 각 지방경찰청에 통보해 피해를 예방하는 쪽으로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

◆사금융(private financing)이란= 은행이나 제2금융권처럼 제도권이 아닌 금전 대여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갚는 관계를 일컫는 말로, 대부분 ‘캐피탈’, ‘컨설팅’, ‘투자’ 등의 간판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일부 업체나 대여업자는 높은 금리와 폭력 등을 동반한 부당 추심행위로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