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카이스트 면학 분위기는 살려나가야 한다

카이스트(KAIST) 학생이 또 목숨을 버렸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들어간다는 카이스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올 들어서만 네 번째다. 2000년 이후 작년까지 10년간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이 14명이나 된다. 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은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서남표 총장은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차등 수업료 징수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면학 풍토에 초점을 맞춘 서 총장의 대학개혁이 2007년 시작된 이후 박수갈채가 쏟아졌지만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다. 이번 불상사와 같은 비극도 종종 발생했다. 섬세한 보완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카이스트에 입학하는 학생 대부분은 과학고 출신이거나 영재고 조기졸업자들이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부모 품을 떠나 따뜻한 환경에서 가까운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고민을 풀고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부족했을 것이다. 경쟁의 압박감을 견뎌낼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연령대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성 개발뿐만 아니라 덕성, 인성 등도 아울러 보살펴주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극단적, 비극적 선택이 합리화되거나 용납될 수는 없다. 인간사회는 각 집단, 개체 간의 경쟁과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로 촘촘히 짜여지는 직물과 같은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장차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질 세계무대로 진출할 인재들이다. 학교 내부의 벽이 높아 보인다고 주저앉으면 되겠는가. 경솔한 행동을 자제하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카이스트 비극을 접하며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하는 카이스트 노력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된다. 최근 발표된 ‘세계대학평가 5개 공학 분야 순위’는 카이스트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준다. 국내 최초의 이공계 중심 대학이라는 카이스트가 토목공학에서 48위, 기계공학에서 49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 컴퓨터·전자·화학공학에서는 50위 안에 들지도 못했다. 면학 분위기는 단호히 살려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