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보다 먼저 법률시장을 개방한 나라 가운데 일본은 “점진적 개방으로 외국 법무법인(로펌) 진출의 충격을 이겨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반면 독일은 “충분한 준비 없이 문을 열어 낭패를 봤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철저하고 구체적인 대비만이 실패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1987년 처음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2004년 4월부터 자국 변호사와 외국 변호사의 동업을 전면 허용했다. 이 17년간 일본은 법률시장 보호를 위해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업과 국민 정서도 외국 로펌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본 로펌은 대형화와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길러 시장에서 살아 남았다.
당시 일본에 진출한 ‘슬라우터&메이’, ‘브라운&플랫’, ‘던&클리처’ 등 세계적 로펌이 정착에 실패하고 철수했다. 현재 일본 상위 10개 로펌 중 외국계 로펌과 합병해 운영하는 곳은 3곳뿐이다. 2010년 12월 현재 일본 변호사는 총 2만8000여명이고, 외국 변호사는 350여명에 불과하다. 독일은 법률시장 개방 준비를 소홀히 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대표적 사례다. 독일은 1998년 시장 개방 후 10대 로펌 중 8곳이 영미계 로펌에 합병됐다. 세계 두 번째 규모로 알려진 독일 법률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영국과 미국 로펌이 달려들어 독일 로펌을 집어삼킨 것이다. ‘토종’ 로펌으로 남은 곳은 헨켈러 뮐러와 글라이스 루츠 둘뿐이다.
이는 독일 법률시장 특성과 관련이 깊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개인 변호사 위주의 시장을 갖고 있었다. 자본과 인력을 앞세운 영미계 로펌이 시장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 독일의 법률 교육은 이론과 철학을 중시하는 반면 영국과 미국은 실무 능력을 우선한다. 기업 인수합병(M&A) 등 분야에서 독일 변호사들은 영미 로펌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싱가포르는 2000년부터 자격 시험을 통과한 외국 변호사한테 일정한 범위의 국내법 업무를 허가하고 있으나 현재 외국 자본이 투입된 합작 법률회사는 6곳에 불과하다. 이는 싱가포르 법률시장 규모가 워낙 작고 경기침체가 계속된 탓으로 풀이된다. 1980년대부터 외국 로펌을 유치한 대만도 초반에 적절히 관리하지 못해 큰 혼란에 빠졌다. 대만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외국 변호사에 대해 “자격을 취득한 나라에서 5년간 실무 경력을 쌓은 뒤에야 대만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규제 조항을 신설했다.
프랑스도 개방 초기 국내 로펌이 영미 등 외국계 로펌에 흡수·합병되는 현상을 겪었다. 프랑스 정부는 로펌 설립 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한 정책으로 돌아섰으나, 여전히 영미계 로펌 비중이 높고 ‘토종’ 로펌은 고전하는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아직 국내 시장은 외국 대형 로펌과 맞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법률시장 개방으로 ‘토종’ 로펌들이 고전한 외국 사례를 잘 연구하면 국내 법률시장의 갈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