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어떻게 지냈을까. 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빈 라덴은 이곳에 몸을 숨긴 채 남성 2명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다. 주민들은 6∼7년 동안 빈 라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그 둘을 그 집에 사는 부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이들을 각각 아르샤드 칸과 타리크 칸으로 알고 있었다. 삼십대인 이들은 사촌간으로 알려졌으며, 둘 다 결혼해 자녀도 있었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시장에 나가 많은 양의 채소·과일·쌀·과자·아이스크림 등을 샀다. 상점 주인 라자 수자는 “이들은 항상 점잖았고,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수상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빈 라덴 일가를 대신해 마을 장례식 등에 참석하거나, 인근 사원 건축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주민들은 빈 라덴의 집에 빨간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일본산 흰색 지프가 드나들었으며, 의사가 종종 투석을 위해 집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빈 라덴이 전화와 인터넷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매일 신문이 배달됐다. 또 수도계량기 4대와 전기계량기 2대가 있었는데, 사용량이 엄청났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탄비르 아메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 종종 실수로 공이 그 집 담장을 넘기기도 했다”며 “문을 열어주는 대신 공 값으로 100∼150루피(약 2∼3달러)를 주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완전히 외부와 차단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사는 자자르 아메드(12)는 영국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 집에 종종 놀러가곤 했다. 문 앞에 달린 카메라로 사람을 확인한 뒤 문을 열어줬다”면서 “그들은 나에게 토끼 두 마리를 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한때 이 집에는 빈 라덴의 자녀 20명이 함께 산 적이 있으며, 이때 빈 라덴의 자녀가 주변 학교에 다녔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빈 라덴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외출했다. UPI통신은 현지 신문 보도를 인용해 빈 라덴이 3월 25일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인 와지리스탄에 나타나 몇 주 동안 머물렀으며, 습격 열흘 전 돌아가 며칠 뒤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빈 라덴은 긴급히 탈출해야할 상황에 대비해 현금과 비상연락 전화번호 등을 옷에 숨겨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날 의회 소식통들을 인용, 빈 라덴이 비상시에 대비해 500유로 지폐를 접어 의복에 바느질해 숨겨두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진경 기자

